<20>토종 후박나무와 일본 후박나무
토종 후박나무 몰랐던 사람들, 일본 목련 들여와 후박나무라 불러
일본 목련은 큰 꽃 피지만 토종 후박나무는 작고 앙증맞은 꽃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 1982년 천연기념물 지정된 ‘이순신 나무’

남해 창선도 단항마을 바닷가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후박나무.

남해 창선도 단항마을 바닷가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후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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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의 존재에 한 걸음 다가서는 일. 대상을 향한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하지 않는 대상의 이름을 부르는 게 내키지 않는 건,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무의 이름을 알고 싶어하는 생각 역시 나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나무 이름에는 나무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생태적 특징이 담기기도 하고, 더불어 살아온 사람살이의 무늬가 고스란히 담기기도 한다. 나무 이름을 정확히 알면 나무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게 당연한 순서다. 사랑의 전제 조건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름을 알기 전에 그 존재에 한 걸음 더 다가서야 한다는 건 식물 관찰에서 매우 요긴하고도 중요한 가르침이다. 식물도감을 펼치고, 줄줄이 나무 이름을 외기에 앞서 나무에 다가서서 줄기에서부터 나뭇잎이 보여주는 생명의 약동에 귀 기울이고, 그의 남다름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얄궂게도 잘못된 이름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아온 나무가 있다. ‘아카시아나무’라는 이름으로 온 동네에 알싸한 향기를 풍기는 하얀 꽃이 사람의 콧등을 유혹하는 나무다. 동요의 노랫말에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었다’고 돼 있는 이 나무의 꽃에서 모은 꿀을 우리는 ‘아카시아 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나무의 올바른 이름은 아까시나무다. 백 년쯤 전에 처음 들여온 이 나무의 학명은 Robinia pseudoacacia L. 인데, 아카시아 앞에 쓰인 슈도pseudo 는 ‘가짜’ 라는 뜻의 접두사다. 풀어보면 ‘아카시아나무가 아니다’ 혹은 ‘가짜 아카시아나무’라는 뜻이다. 아카시아나무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나무를 오랫동안 아카시아나무라고 불러왔다.

아카시아나무는 우리 기후에서는 자랄 수 없는 열대식물이다. 아프리카 초원을 배경으로 한 동물 다큐멘터리에 종종 들판 한가운데에 홀로 우뚝 선 채 등장하는 나무가 아카시아나무다. 하얀 꽃을 피우는 아까시나무와 달리 아카시아나무에서는 노란 색의 자잘한 꽃이 피어난다.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꽃까지 전혀 다른 나무다. 비슷한 건 나뭇잎 정도다.


잘못 부르는 이름 가운데에는 외국에서 들어온 식물이 우리 나무의 이름으로 불리는 바람에 우리 땅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온 토종 나무가 이름을 빼앗기는 묘한 경우, 억울할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


후박나무가 그렇다. ‘후박’이라는 이름의 어감애 맛깔나고 후덕한 느낌이 든 바람에 우리의 시편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많은 시편에서 후박나무라고 가리킨 팔구할은 틀렸다. 대개는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로 잘못 부른 것이다. 특히 중부지방에서 자라는 것으로 이야기한 후박나무는 십중팔구 일본목련이다.


일본에서 들어온 일본목련은 넓은 낙엽성 잎 위에서 흰 색의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일본에서 들어온 일본목련은 넓은 낙엽성 잎 위에서 흰 색의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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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목련은 일본이 고향인 목련 종류의 나무로, 오뉴월에 하얗게 피어나는 꽃이 크고 꽃송이 아래에 풍성하게 펼쳐진 큼지막한 잎도 후덕한 인심을 연상하게 한다. 미끈하게 발달하는 줄기 껍질의 고운 느낌까지 사람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나무다. 전체적인 인상이 후박나무라는 이름에 잘 어우러지면서 그 이름은 거부감 없이 불려왔다. 사달은 일본 이름이 후박(厚朴)인 이 나무를 처음 들여올 때에 우리 토종 후박나무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부른 데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안타까운 건 ‘후박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의 토종 나무가 엄연히 이 땅의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후박나무와 일본목련은 근본부터 다르다. 일본목련의 꽃은 가지 끝에서 큼지막한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후박나무는 한 송이의 지름이 1cm도 채 안 될 정도로 작고 앙증맞은 꽃을 피운다. 그나마 한데 모여 피어나기 때문에 존재감은 또렷하지만, 일본목련 꽃과는 분위기가 아예 다르다. 게다가 후박나무는 상록성 나무여서 가을에 후박하게 보이는 큰 잎을 모두 떨구는 일본목련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우리 땅에서 자라온 후박나무와 전혀 다른 일본의 나무를 후박나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면 토종 후박나무는 고유의 우리 이름을 잃게 된다. 우리의 후박나무는 줄기도 굵게 발달하고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퍼져서 매우 푸근한 나무여서, 남부 지방에서는 느티나무나 팽나무처럼 흔히 정자나무로 이용한다.


노량해전 때에 이순신 장군과 그의 병사들이 들어와 전력을 정비했다는 전설의 후박나무 그늘.

노량해전 때에 이순신 장군과 그의 병사들이 들어와 전력을 정비했다는 전설의 후박나무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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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후박나무를 대표할 만한 큰 나무가 일본인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넋을 담고 서 있는 나무라는 건 더 얄궂다. 198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가 그 나무다. 접두사로 ‘왕’이 붙었지만, 후박나무와의 차이가 미소한 까닭에 최근의 식물분류학에서는 두 나무를 구별하지 않는 추세다. 처음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당시의 고유명사에 ‘왕’이 붙어 있을 뿐이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경남 남해군 남해도에 딸린 작은 섬 창선도 대벽리의 단항마을 바닷가로, 통영의 한산도에서부터 여수에 이르는 한려수도의 중간 쯤에 위치한 마을이다. 노량해전 때에 이순신 장군이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운 바닷가이기도 하다.


마을 앞 바닷가에 서 있는 이 후박나무는 오래 전에 용왕이 마을 어부들에게 보내준 나무라고 한다. 그때 마을의 한 늙은 어부가 마을 잔치를 벌이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다. 어부는 마을 사람을 모두 모이게 한 뒤, 물고기의 배를 갈랐는데, 그 안에 나무의 씨앗이 들어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씨앗을 용왕이 보내준 선물이라고 여기고, 양지 바른 자리에 심었다.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가 생명을 시작한 순간이다.


‘용왕이 보낸 씨앗’은 새싹을 틔우고 우람하게 자랐다. 사람들은 험한 바닷일을 하는 어부를 보호하기 위해 용왕이 보내준 이 나무 앞에서 해마다 음력 3월 10일에 모두 모여 제사를 올렸다. 이 제사를 ‘용왕제’라고 부르며 사람들은 어부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했다. 긴 세월이 흐르며 나무는 높이 9m의 큰 나무로 자라나 마을의 상징이 됐다. 납작한 공을 덮어놓은 듯한 푸근한 모양의 나무는 사방으로 펼친 나뭇가지 펼침 폭이 무척 넓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동서로 21.2m, 남북으로 18.3m에 이르는 나뭇가지가 이루는 그늘은 마을 사람 모두가 들어서고도 남을 만큼 널찍하다.


우리 토종의 후박나무는 황록색의 자잘한 꽃이 가지 끝에 모여 피어난다..

우리 토종의 후박나무는 황록색의 자잘한 꽃이 가지 끝에 모여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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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에 이순신 장군의 넋이 담기게 된 건 정유재란(1597)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이 이 마을 앞 바다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던 때였다. 이순신 장군이 이 마을에 잠복했던 그때 우리의 전력이 적군에 비해 적은 편이라고 판단한 장군은 주변에서 대나무를 모아와서 불을 붙였다. 불 붙은 대나무는 마디가 터지면서 대포 소리를 냈고, 먼 바다에서 이순신 함대의 동정을 엿보던 왜군은 그 소리에 주눅이 들어 줄행랑을 놓았다. 그러자 장군은 병사들과 함께 이 후박나무 그늘에 모여 쉬면서 전열을 정비하고 다음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의 승전을 축하하고 성원하는 마음으로 푸짐한 음식을 내놓았으며, 이때부터 이 나무를 ‘이순신 나무’라고 불렀다. 장군이 잠시 쉬어갔을 뿐이지만, 워낙 존경하는 장군이 쉬어 간 나무라는 것만으로도 마을의 자랑이 된 것이다.

이 나무가 바로 우리 토종 후박나무의 대표적인 노거수다. 일본목련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김새와 전혀 다른 꽃을 피우는 우리의 나무다. 이순신 장군을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인들의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는 일본목련과는 다른 나무다.

한 그루의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의 자취를 돌아보며 이름을 안다는 것의 의미를 한번 더 되새길 일이다. 바닷가 후박나무 그늘에 들어 나무의 이름을 바르게 아는 것과 이 땅의 역사를 올바로 돌아보는 게 서로 다른 일이 아님을 되짚어보는 초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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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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