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콘덴서 케이스 시장 휩쓴 스피폭스
법정관리 아픔 딛고 스마트공정 자체 개발
알루미늄 폐자재는 건자재로 활용

김용래 스피폭스 대표.

김용래 스피폭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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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2019년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품목 3종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자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요 기업 공장이 문을 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지난해엔 중국산 요소수 수급 차질로 '요소수 대란'이 발생했다. 이에 화물차·소방차·구급차 등 디젤엔진을 쓰는 차량이 멈춰설 수 있다는 공포가 온 나라를 휩쓸기도 했다. 최근엔 탄산·골재·식용유·밀가루 등에서 수급 불안이 야기돼 우리 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고있다.


한 국가나 기업이 특정 원재료나 제품, 기술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을 경우 이를 수입해 쓰는 국가나 기업은 늘 '을'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별다른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은 오로지 기술력 하나로 이런 구조적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국내 산업계 전반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위기감과 사명감이 퍼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세계 콘덴서 케이스 시장 휩쓴 스피폭스

이런 가운데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정상에 오른 한 강소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경기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스피폭스'다. 스피폭스는 표면실장(SMD)형 알루미늄 전해 콘덴서 케이스 부문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55%) 업체다. 김용래 스피폭스 대표는 "제품 불량률을 줄이기 위한 전수검사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점유율은 75% 이상으로 커질 것"이라며 "이는 우리 공장이 문을 닫으면 세계 반도체 시장이 흔들릴 수 있는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자신했다.


스피폭스이 생산하는 알루미늄 콘덴서 케이스.

스피폭스이 생산하는 알루미늄 콘덴서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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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설립된 스피폭스는 콘덴서 케이스의 원재료인 알루미늄의 생산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력으로 기존 시장의 강자였던 일본을 따돌렸다. 일본은 알루미늄 판을 통째로 가공해 케이스를 만드는 방식을 썼다. 하지만 스피폭스는 우선 판을 동전모양으로 자르고 접어 컵형태의 반제품을 만든 뒤 여기에 압력을 가해 케이스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렇게 하면 동일한 면적의 알루미늄 판에서 더 많은 케이스를 만들 수 있다. 김효진 스피폭스 전무는 "우리만의 기술력으로 6파이짜리 콘덴서 케이스 기준 약 30%의 원가절감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스피폭스는 1999년 콘덴서 케이스에 폴리에스테르(PET) 필름을 입히는 기술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는 애초에 일본이 개발하려다 포기한 기술이다. 일본은 케이스에 PET 필름 대신 나일론을 붙인다. 두 기법 모두 절연성과 내열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김 대표는 일본 제품을 직접 뜯어보고 연구해 열과 압력으로 PET 필름을 케이스에 입히는 기술을 고안해냈다. 김 대표는 "150도에서 5000여시간 가열하는 변색테스트에서 나일론은 변색됐지만 PET 케이스는 그대로였다"면서 "PET는 나일론과 달리 매립할 경우 생분해되기 때문에 환경 친화적"이라고 강조했다.


법정관리 아픔 딛고 스마트공정 자체 개발

보통 중소기업은 스마트공정을 구축할 때 자체 개발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주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피폭스는 제품 생산과 클리닝, 히팅, 불량조사 등 생산라인 전 영역에 걸친 스마트공정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


김 대표가 스마트공정 시스템을 도입한 계기는 법정관리(기업회생)의 아픈 경험 때문이었다. 스피폭스는 현금유동성 악화와 중국법인 손실로 201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17년 졸업했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인건비 절감과 생산력 향상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시아에 공장을 지을지, 아니면 국내 공장에 로봇을 도입할지 선택해야 했다. 김 대표는 결국 로봇을 도입하기로 했고 이는 스피폭스 스마트공정의 시작이었다. 김 대표는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웬 로봇을 사오겠다고 하니 당시 파산관재인이던 판사가 의아해 했다"면서 "납품 주문은 들어오는데 사람이 없으니 로봇으로 제품을 만들어 돈을 갚겠다고 집요하게 판사를 설득해 결국 허가를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스피폭스의 스마트공정라인에 위치한 한 로봇이 알루미늄 케이스를 담는 통을 옮기고 있다.

스피폭스의 스마트공정라인에 위치한 한 로봇이 알루미늄 케이스를 담는 통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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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폭스는 이후 스마트공정을 꾸준히 도입해 현재 하루에 4000만~7000만개의 콘덴서 케이스를 생산하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 2019년 153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220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매출은 260억원, 내년은 300억원 돌파가 목표다.


스피폭스는 현재 생산한 케이스 전체를 자동으로 전수검사하는 시스템을 개발중이다. 현재 스피폭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업체들은 그날 생산한 제품 중 일부를 샘플링으로 뽑은 뒤 불량품을 조사한다. 만약 1000만개 중 1개라도 불량품이 있다면 모두 폐기해야 한다. 하지만 전수검사 시스템이 개발되면 하자 있는 제품만 걸러내면 된다. 김 대표는 "전수검사 기술 개발이 90% 완료된 상태"라며 "이 기술이 완성되면 세계 산업의 트렌드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래 스피폭스 대표가 자사 스마트공정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김용래 스피폭스 대표가 자사 스마트공정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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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폐자재를 건자재로 탈바꿈
스피폭스의 '파파야 시스템'.

스피폭스의 '파파야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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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폭스는 콘덴서 케이스를 만들고 남은 월 60t 가량의 알루미늄 폐자재를 버리지 않고 건자재로 재활용하고 있다. 건자재 이름은 '파파야 시스템'으로 구멍뚫린 알루미늄판에 동도금과 부식방지용 특수코팅이 칠해진 온돌용 열전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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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야 시스템을 적용한 결과 22%의 온수난방 에너지 저감효과를 입증해 중소벤처기업부와 환경부로부터 탄소배출감소 성능인증도 획득했다. 김효진 스피폭스 전무는 "파파야 시스템은 30평 아파트 기준으로 연간 18만원 정도의 난방비가 절감된다"면서 "설치비 회수는 물론 연간 633kg의 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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