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공장 유치" 글로벌 경쟁 치열해졌는데…공회전하는 韓(종합)
현대차·기아, 생산기지 변경 놓고 노조 대립에 답보상태
작년 中 전기차 수출액 86억달러로 1년새 5배 이상 늘어
외국 완성차 현지 생산체계 확충…현대차·기아도 반등 노려
전문가 "퍼스트무버 가능성 열려있어 우리만의 모델 개발을"
#현대자동차는 이달 중순부터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아이오닉5 생산을 시작했다. 이 차는 현대차그룹이 개발한 전기차 전용플랫폼 E-GMP를 적용한 첫 모델로 현대차·기아의 해외 완성차공장에서 생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량 국내 울산공장에서 만들었던 기존 전략을 바꿔 해외로 생산기지를 바꾼 것이다.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유현석 기자]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이 앞다퉈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생산 인프라가 크게 뒤처지고 있어 정책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공장에 신규 전기차를 투입하는 방안을 둘러싸고 노동조합의 저항과 글로벌에 역행하는 정책 등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9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지난해 11월 광명공장을 전기차 생산기지로 바꾸기로 했지만 5개월째 답보상태다. 인력감소를 우려하는 노조와의 점접을 찾지 못해서다. 2020년 초 전기차 등 미래 이동수단업체로의 전환을 뜻하는 ‘플랜S’를 발표, 광주공장·화성공장 다음으로 광명공장을 세 번째 전기차 생산공장으로 낙점했지만 진도를 나가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노조 측은 이달 중순 사측이 연간 사업계획을 설명하자 "전기차 전개 시 조합원은 고용안정을 우선 생각한다"며 "노조는 조합원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측에 전혀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 역시 세단형 전기차 아이오닉6를 아산공장에 물량 배정했지만 구체적인 양산 시기는 미정이다. 새 모델 양산을 위해서는 회사와 노동조합 간 생산라인에 배치하는 노동자 수를 정하는 ‘맨아워’를 합의해야 하는데 노사 간 이견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상 국내 전기차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차·기아가 노조의 발목에 잡혀 관련 시장에 공격적 대응이 쉽지 않은 것이다.
노조 "고용보장 안되면 협조 안한다" 엄포
현대차·기아, 국내 전기차 전환 진통
해외선 잇따라 전기차 생산인프라 확충
실제 주요 완성체 공장별 노조마다 신형 전기차 배정에 대한 요구는 드세지만 현장에 투입할 노동인력을 둘러싼 시각차는 매우 큰 상태다. 전기차 조립라인은 기존 내연기관에 비해 투입인력이 3분의 1 정도 줄어든다. 차종별 투입인력이 노사 간 합의사안인 데다 조합원 감소에 민감해하는 노조로서는 쉽게 도장을 찍지 않는다.
국내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한시가 급한 완성차업체들은 해외로 전략을 틀고 있다.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아이오닉5를 생산하기로 한 현대차의 경우 미국 내 전기차 생산을 위한 밑그림도 막바지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해 미국에서만 2025년까지 74억달러를 투자해 전기차 공장 등 미래 모빌리티사업과 관련해 투자키로 하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다듬어왔다. 현대차가 기존 앨라배마주에 있는 미국공장을 증설하는 한편 같은 그룹 완성차계열사 기아는 현지에 전기차 전용공장을 신설하는 방안까지 후보지로 두고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아 미국 공장이 있는 조지아주를 포함해 ‘선벨트(기온이 온화한 중남부 아래 지역)’ 동부권 일대가 유력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전기차 전용 공장은 아직 국내에도 없는 상태다. 각종 규제도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를 막는 걸림돌이다.
"中心 잡아라" 전기차 격전지 된 중국
현지업체·외산메이커 선점경쟁 치열
중국 내 전기차 공장 잇따라 확충
한국 전기차 시장이 노조와 각종 규제에 발목을 잡힌 사이 글로벌 주요국들은 전기차를 미래 먹거리로 꼽고 대대적인 투자에 한창이다. 특히 전기차 시장에 가장 과감하고 전투적으로 돈을 쏟아붓는 국가는 중국이다. 2020년까지만 해도 전기차 수출 7위 국가, 내연기관을 포함한 전체 승용차 시장에선 10위권 밖에 있던 중국은 최근 5년간 전기차 수출액이 연 평균 200% 급등하며 주요 시장의 주도권을 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미래차 주도권이 전기차로 넘어간 만큼 해외 선진기술 유치, 수출 확대 전략 등 정부가 다양한 유인, 투자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수출액은 86억달러로 한 해 전보다 다섯 배 이상 늘었다. 수출금액은 고가 전기차 비중이 큰 독일·벨기에에 이은 3위이나 대수로는 50만대로 2위 아래 나라(독일 23만대)를 멀찌감치 제친 선두다. 수출이 늘었다는 건 중국산 전기차를 찾는 수요가 전 세계에서 늘고 있다는 얘기다.
‘우물 안 개구리’ 취급을 받던 중국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를 계기로 급변하고 있다. 연간 2000만대가 넘는 수준이나 여전히 성장잠재력이 큰 내수 수요, 그로 인해 전 세계 완성차업체가 현지 공략을 위해 일찌감치 진출하면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배경으로 한 가운데 자국기업에 유리한 보조금 정책을 짜는 등 전기차 보급·생산에 적극 나선 덕분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의 경우 기존 내연기관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아 중국 현지기업만 400~500여곳이 직접 전기차를 생산·판매하고 있다"며 "체리·지리·창청 등 현지 상위권 메이커는 자국 수요를 바탕으로 쌓은 기술력으로 해외 수출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외국 완성차 기업도 현지 생산체계 확충에 나섰다. 세계 최대 완성차업체 테슬라는 지난해 상하이 공장을 완공한 데 이어 추가로 신축, 연산 200만대로 늘리는 방안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차 2위 메이커 폭스바겐 역시 현지 공장을 늘려 내년 말께 연산 100만대 생산·판매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논란 후 현지 점유율이 급락한 현대차·기아도 전기차로 반등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현지 맞춤형 전략모델을 생산하는 한편 자체 개발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적용모델 출시도 조율 중이다. 중국이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세계 최대 완성차 시장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그룹이 세계 최대 배터리 메이커 중국 CATL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는 것도 현지 전기차 생산을 염두에 둔 행보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중국 일부 브랜드 전기차는 기술적으로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이라며 "소비자 평가가 냉혹한 중국 내수시장에서 생존하며 뛰어난 상품성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기차는 퍼스트무버 돼야"
우리나라는 지금껏 내연기관차에 이어 전기차 생산규모 역시 전 세계 5위권 안팎에 있지만 현 수준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내수시장이 작은 한계도 있지만 강성노조 등으로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기 힘든 데다 차량부품 등 전방산업이 함께 커나가기 쉽지 않은 처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에서도 완성차 회사의 전기차 공장이나 배터리 등 핵심부품 생산기반을 갖추기 위해 다각도로 나서고 있으나 국내에선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지난해 전동차 생산비중은 중국이 13.6%, 스페인이 9.3%이며 우리나라는 8.2%로 글로벌 평균 수준과 비슷하나 일부 기업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지금과 같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는 국내에 공장을 둔 회사라도 전기차 생산 의지를 갖기 힘들다"며 "정부에서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국내 생산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노조와의 타협점을 찾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생산라인을 갖춘 이후에도 노조와 인력투입 협상에 수개월을 쓴다. 한국GM 역시 최근 부평·창원공장 신규차종 생산공정을 정비했으나 아직 전기차를 국내에서 생산할 계획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쌍용차가 개발한 코란도 이모션 역시 최근 사전계약을 받았으나 배터리 수급문제로 일찍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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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은 "노사관계가 어렵고 인력 구조조정이 시장 상황에 따라 쉽지 않아 (국내 완성차회사도) 전기차로 전환했다가 비용만 떠안고 어려워지는 걸 걱정한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우리가 내연기관이 패스트팔로워였다면 전기차는 퍼스트무버 가능성이 아직 열려 있다"며 "미래차 주도권이 전기차로 넘어간 만큼 부품산업이나 충전인프라 등 전기차 전·후방을 함께 키워낼 수 있는 우리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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