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 작가병에 걸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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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민섭아, 너, 작가병에 걸린 것 같아.” 하고. 나는 그때 많이 바쁜 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에는 학교, 점심에는 독서모임, 저녁에는 도서관, 하는 식으로 여기저기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코로나가 찾아오기 전에 1년 동안 몇 번이나 그런 자리가 있었나 세어 보니까 230회 정도 되었다. 친구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저녁 일정이 끝나면 혼자서 뭐라도 먹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나의 말 때문이었다. 연예인들이 큰 행사가 끝나고 나면 집으로 잘 들어가지 않고 함께 일한 사람들과 새벽까지 시간을 보낸다고 들었다면서, 네가 무슨 연예인이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실제로 병의 징후가 있었던 것 같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초청을 받아 본 일이 별로 없었다. 매일 얼굴을 보는 선후배들과 밥을 먹었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작가로서의 나를 초청해 주는 사람들과 만나니까, 그것 참, 말도 안 되게 고맙고 설레는 것이었다. 강연비 같은 것은 물어보지도 않고 저를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책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그들과 만났다. 거기에는 나의 책을 읽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그들은 나를 알고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는 것이다. 나에게는 곧 온전한 2시간이 주어진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나의 말을 다정하게 경청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끝나고 나면 그들은 나에게 와서 책을 잘 읽었다고도 하고 가져온 나의 책에 서명도 받아간다. 담당자는 정말 좋은 강연이었습니다, 하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몇 가지 나쁜 버릇이 생겼다. 나는 가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며 모두가 나를 경청할 것이라는, 아니 나아가 사랑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선배의 부친상이 있어서 갔던 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강의를 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10분이 넘게 나의 이야기를 한 참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는 했으나, 그도 참 황당했을 것이다. 저녁 강의가 끝나고 나면 뭐라도 먹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이 즈음이다. 그 특별한 시간을 지나 가장 익숙한 공간으로 들어가고 나면 알 수 없는 허기가 찾아왔다. 모두가 오냐오냐 해 주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작가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아, 이거 수업에서 말하면 다들 이해해 주시는데...” 하는 말을 듣는다. 아뇨, 그건 당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만이 오기 때문입니다. “제 강연 다 좋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아뇨, 그건 그들이 당신을 초청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읽히고 사랑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가장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가고 상상해야 한다. 어떤 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자신을 계속해서 돌아보는 사람만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SNS의 인플루언서든, 구독자가 적당히 있는 유튜버든, 지지 기반이 있는 정치인이든, 누구나 마찬가지다. 나도 완전히 나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그러나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지 않으면서, 잘 살아가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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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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