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세종=김혜원 기자, 서울=최대열, 이혜영 기자] 국민연금공단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로 이관하려는 보건복지부의 계획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경제계의 거센 반발 속에 유관부처 내에서도 반대 기류가 커서다.


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전체회의를 앞두고 국민연금 대표소송 권한을 수책위로 일임하는 내용의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 추진을 철회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책임 없이는 권한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강하다"면서 "이번 정부에서는 관련 사안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금운용위에는 주무부처인 복지부 차관 외에 타 부처 차관이 이례적으로 참석해 각 부처의 입장을 설명하고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5면

복지부는 올해부터 예정된 국민연금 대표소송과 관련해 결정권을 자문기구에 불과한 수책위로 넘기려다가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자체로도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과도한 기업 경영권 침해라고 주장하면서 전문성이 부족한 수책위의 소송 남발 가능성과 책임 소재 불분명을 우려해왔다. 수책위가 소송 제기 결정을 내리면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이를 견제할 수단이 없고 패소 시 기업에 끼친 피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권한과 책임이 일치해야 한다"는 재계의 이 같은 입장에 청와대도 일정 부분 수긍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책위가 노동·시민사회단체 추천 위원으로 편중 구성돼 있어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않다는 점도 부처 간 논의에서 지적됐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반(反)기업 정서를 자극하는 게 부담 요인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면서 "대선 이후 지침 개정 재추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대표소송 권한 수책위 이관 물 건너가(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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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소송 지침 개정 없던 일 됐지만…재계 "대선 후 안심할 수 없다"

정부가 추진했던 국민연금 대표소송 개정안이 사실상 철회 수순에 들어갔으나 재계에서는 마냥 안심하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정부 의지에 따라 언제든 다시 추진할 여지가 있어서다. 논란이 된 지침의 경우 지난해 12월 개정안이 나오기 전후로 주무부처와 이해당사자 간 소통이 부족했던 상태에서 추진됐던 터라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경영계의 우려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현 정부에서 한 발 물러서더라도 차기 정부에서 (국민연금 대표소송에 대한) 우려가 계속될 것"이라며 "정부 입김이 클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 조직과 지배구조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계속 반복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손석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은 "당연직 정부위원 사이에서도 이 사안을 더욱 신중히 접근해야 할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봤다.


경영계에서는 그간 이번 지침 개정안이 권한 위임을 잘못하고 있다며 개정 작업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국민연금의 대표소송의 결정 권한을 기금운용본부가 아닌 수책위가 전담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사실상 경영활동에 대한 모든 결정이 소송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만큼 수책위로 이관될 경우 경영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주장이다.

국민연금 대표소송 권한 수책위 이관 물 건너가(종합) 원본보기 아이콘


경영계 "잘못된 권한 위임, 수책위 대표소송 결정은 위법 소지도"
소송 남발시 연금 주인 국민도 손해 지적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총 261개사다. 이중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상장사는 9곳, 2대 주주인 곳은 208개에 달한다. 10%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도 48곳이다.


소송이 남발되면 연기금과 기업은 물론 연금 가입자인 일반 국민에게까지 피해를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이 반대하는 이유다.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 단체 7곳은 지난달 지침 개정을 보류하는 한편 국민연금 대표소송 절차나 주체와 관련한 내용을 법률에 명확히 담아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단체는 성명에서 "전체 연금보험의 42%를 순수 부담하는 기업이 대표소송의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됨에도 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경제계와 사전 의견 수렴조차 갖지 않았다"며 "개정안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것은 명목상 주주가치를 앞세운 실질적 경영 간섭에 불과하고 이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기준 국민연금 기금 규모 917조8000억원 중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17.9%인 163조9000억원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7%에 이른다. 유 팀장은 "(수책위로 이관될 경우) 기업은 기업대로 손해고 국민의 노후보장이 목적인 국민연금도 결국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될 것"이라며 "이를 다시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연금 개혁과 구조 개편을 선행한 뒤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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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 관계자는 "개정안이 불합리한 부분이 많은 만큼 소모적 논란이 지속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면서 "대표소송 권한 이관이 백지화됐다고 하지만 다시 또 추진될 가능성이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다"고 우려했다.


세종=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이혜영 기자 he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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