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신상공개 지침 개정…피의자에 의견 제출 기회 부여·방어권 보장
시민들 "피의자보다 피해자 권익 챙겨야" 분통
김병찬·권재찬의 경우 신상 공개 반대했지만 결국 공개 결정
경찰청 인권위 "신상공개되면 회복할 수 없는 피해…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공개" 권고

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지난달 2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김씨는 지난달 19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중구의 오피스텔에서 전 여자친구인 A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지난달 2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김씨는 지난달 19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중구의 오피스텔에서 전 여자친구인 A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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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최근 경찰이 발표한 신상공개 지침 개정안에 따라 신상 공개 결정 전 피의자가 의견 제출할 기회를 받게 되자 시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스토킹 살인 등 잔혹 범죄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이번 개정안이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해친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달 13일 경찰청에 따르면 국가경찰위원회는 지난달 8일 열린 정례 회의에서 '피의자 얼굴 등 신상공개 지침 일부개정지침안'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여기에는 신상공개심의위원회 개최 사실을 피의자에게 사전 통지하고 의견 제출 기회를 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신상공개가 결정되면 처분 내용을 서면으로 통지해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절차도 마련하도록 했다.

시민들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에게 신상공개 의견을 묻는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시민의 알 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등 공익을 위해 생겨난 신상공개 제도의 본 취지를 해친다는 지적이다.


한 누리꾼은 댓글을 통해 "우리나라처럼 범죄자 인권 생각해주는 선진국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후진국이다"라고 비판했다. 또다른 누리꾼도 "피해자보다 피의자 의견을 더 존중하는 경찰"이라고 비꼬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청원글이 올라왔다. 12일 마감된 '피의자 신상공개 지침 일부개정지침안 반대합니다'라는 청원글은 총 4697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심의위 전 피의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에 대해 "공익보다 피의자 인권 우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피의자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 생각은 안 하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잔인한 피의자를 신상 공개해야 국민들이 보고 알아서 피해(갈 수 있다)며 "피의자 방어권보다 피해자 유족 방어권이나 신경 써 달라"고 촉구했다.


50대 여성을 살해한 뒤 공범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권재찬이 지난 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는 모습(왼쪽)과 공개된  사진.

50대 여성을 살해한 뒤 공범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권재찬이 지난 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는 모습(왼쪽)과 공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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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피의자 의견이 공개 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아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5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 유기를 도운 공범마저 살해한 권재찬의 경우 새 지침에 따라 심의위 개최 전 의견 제출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는 "얼굴과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위원회 측은 이 사건이 신상공개 요건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지난 9일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위원회는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데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이는 등 요건을 충족해 만장일치로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 중구에서 스토킹 살인을 저지른 김병찬 또한 의견 제출 기회를 받았다. 김씨도 자신의 신상공개에 동의하지 않았으나, 그의 신상은 지난달 24일 공개됐다.


김씨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전 연인 A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A씨와 헤어진 뒤 5개월 간 지속적으로 스토킹과 협박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A씨는 경찰 신변보호를 받고 있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경찰청 인권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른 것이다. 지난 9월6일 공개된 권고결정문에 따르면 경찰청 인권위는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정보 공개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발생하게 한다는 점을 고려해 경찰업무와 직접 관련되는 범죄 예방과 수사상 목적이 있는 경우에 한정해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공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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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권위는 "신상공개 여부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의견진술 및 소명자료 제출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피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언론 등 외부 공개를 최소화하도록 개선하라"고도 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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