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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 당신의 발작버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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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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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버튼이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특정한 이슈, 혹은 특정 인물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열을 내고 흥분할 때 쓰는 말이다. 당신의 발작버튼은 무엇인가? 여러 사건과 유명인들 이름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갈 것이다. 내 경우에는 뭔가를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볼 때 발작버튼이 눌리는데 최근에는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에 발끈해버렸다.


우리나라 치킨에 쓰는 닭의 크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대체적으로 작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음식에도 계급이 있고 치킨이라는 음식은 서민이나 먹는 음식이며 우리나라 치킨은 맛이 없다는 등등의 주장에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국민에게 취향을 가르치려 들어? 당신이 뭔데? 게다가 리나라 치킨이 맛이 없다는 주장이 객관적 사실이라며 또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민망해졌다. 글을 쓴다는 분이 국어공부를 전혀 안했나? 황교익 씨. 맛이나 주장은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그건 동그란 네모나 선량한 전두환 같은 형용모순이에요.

발작버튼의 반대말로 열광버튼은 어떤가? 최근 메이저리그의 쇼헤이 오타니 선수가 필자의 열광버튼을 제대로 눌렀다. 올해 오타니는 100년 넘는 야구역사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며 MVP를 비롯한 주요 상을 싹쓸이했다. 그는 소속팀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지고 가장 빠른 볼을 던지고 가장 승리를 많이 거두고 가장 삼진을 많이 잡는 동시에 평균자책점도 가장 낮은 에이스 선발투수였다. 그것만으로 대단하지만 메이저리그 최고의 강타자로도 활약했다. 홈런은 리그 전체 3위, 2루타 이상 장타율은 1위, 빠른 발이 필수인 3루타도 1위, 도루는 전체 8위…. 앞에서 말한 형용모순적인 기록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동그란 네모를 그린 것이다!


필자가 오타니에게 열광한 이유는 그리스 조각 같은 외모나 탈인간급 능력 때문이 아니다. 모두들 안 된다고 했던 ‘이도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고난의 세월을 견뎌낸 의지에 열광한다. 연봉에 광고비에 매년 수백억씩 돈을 벌면서 늘 겸손하고 검소한 모습에 열광한다. 불같은 열정과 얼음 같은 자제력을 동시에 갖춘 위대한 정신에 열광한다. 시즌 중에 방역수칙까지 어겨가며 숙소에 여자를 불러 술판을 벌이고 역학조사 과정에서 거짓말까지 일삼은 우리 선수들의 한심한 모습과 비교되어 오타니 선수가 더 멋있어 보인 것 같기도 하다.


나처럼 오타니에 열광버튼이 눌린 사람도 있지만 동시에 발작버튼이 눌린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왜 일본인 선수를 응원하고 찬양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불편한 감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필자 역시 일본과의 무역 분쟁 이후 번졌던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타니 선수의 경이로운 활약을 지켜보면서도 그를 좋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마음껏 오타니에 열광해도 좋을까?

음식이나 스포츠는 양반이지. 그 어떤 분야보다 많은 사람들의 발작버튼과 열광버튼이 눌리는 분야가 정치다. 이제 대통령 선거는 100일도 남지 않았고 하루하루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삑삑 버튼 눌리는 소리가 자주 요란하게 들릴 것이다. 그 소리가 유권자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면 무척 반갑다. 그러나 맹목적인 지지나 비난의 고함소리라면 걱정된다. 버튼을 누르기 전에 우리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나의 발작과 열광이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 아무리 정치판이 한심하게 돌아가도 차기 대통령은 치킨과 야구보다 우리 삶에 더 큰 영향을 끼칠 테니까.


이재익 소설가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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