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독자를 만나면 글을 쓰는 일과 시의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난해 ‘밤엔 더 용감하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한 미국의 여성 시인 앤 섹스턴의 시집을 읽고 강원도에서 어떤 분이 소감을 보내 주셨다. 50대 중반, ‘엄마는 날 이해 못해’라는 말을 하는 딸을 둔 엄마이자 늙은 엄마에겐 아직도 마음 놓이지 않는 딸이라고 하신 그분은, 1960년대 미국의 현실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시공간과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넘어 도달하는 아픈 공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신다. 그러면서 "용감해지는 일이 여전히 너무 어려워요" 하신다.
시집 제목 ‘밤엔 더 용감하지’는 ‘그런 여자 과’라는 제목의 시에 나오는 구절인데, 읽다 보면 참 착잡해지는 시다. 걷잡을 수 없는 정념에 사로잡혀 집을 나와 마녀처럼 날아다니는 여성이 결국 가는 곳이 숲속 동굴이라는 사실. 거기서 요정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집을 나와서도 ‘돌봄’의 몫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사는 여성의 현실을 시인이 절묘하게 포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부과하는 몫이나 관습을 깨고 나오는 일은 쉽지 않다. 어릴 때부터 학습된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벗어던지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오랜 세월 덧씌워졌던 ‘가정의 천사’라는 이름만 해도 그렇다. 일하는 여성들은 밖에서 남성 못지않게 일도 잘 하고, 자녀들 교육도 완벽히 시키고, 식구들 밥도 잘 챙기고, 어른들도 잘 모셔야 하는 여러 몫을 동시에 부과받는다. 어느 하나라도 놓치면 열패감에 시달리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시대가 부과한 가정의 천사 역할을 버리지도 못하고 온전히 감당도 못한 여성이 자기 분열을 겪는 양상을 절묘한 시의 언어로 포착했던 시인은 그 용감한 시의 언어와는 달리 자기 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시에서 여성 화자가 신나게 거리를 누비다 결국 수레바퀴에 갈비뼈가 다 부서진 것처럼, 시인도 그렇게 부서졌다. 시인은 떠났지만 독자는 시를 읽고 오늘 하루 더 큰 숨을 쉬는 힘을 얻었다 한다.
시를 읽으며 다시 물어본다. 우리는 어디까지 용감해질 수 있을까. 용감하면서 부서지지 않고 온전히 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용감하게 상사의 성추행을 고발했다가 2차 가해를 겪고 죽어간 이의 이야기를 접하며, 용감하게 불을 끄다 목숨을 잃은 소방관의 선한 눈망울을 보며, 한 번 더 묻는다. 용감해지는 일, 그 선한 용기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의 비겁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타인의 용감함을 너무나 쉽게 조롱하는 이들이 많은 사회에서, 한 인간으로서 용감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용감해지다 다치고 용감해지다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리는 일은, 결국 함께 있어 주는 일이 아닐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진실을 밝히려고 싸우는 이에게,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본다. 그 외로움과 고단함에 손을 내밀어 본다. 곁에 있겠다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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