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현상'으로 개헌 논의 물꼬 트여
대선 후보들 앞다퉈 개헌 주장…대통령 중·연임제 요구 많아

박병석 국회의장과,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가 25일 국회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원격영상회의 본회의 시연회에 참석, 회의장을 둘러보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박병석 국회의장과,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가 25일 국회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원격영상회의 본회의 시연회에 참석, 회의장을 둘러보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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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금보령 기자, 박준이 기자] "우리 정치는 대통령 선거를 치른 다음 날부터 차기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 체제로 인해 극단적 정쟁과 대결 구도가 일상이 되어버렸고, 민생보다는 정권 창출을 목적으로 투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잘 설명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10월24일 한 연설 속 내용이라는 점에서 공허하다. 그는 줄곧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다가 국정농단으로 인한 위기를 어떻게든 모면해보려고, 급한 김에 개헌 카드까지 제시했던 것이다. 개헌 논의의 양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정치의 핫이슈 ‘청년’이 개헌 불쏘시개로…=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결실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한 이후 34년간 변하지 않았다. 1987년 이래 각 대통령들은 내각제와 대통령 4년 연임제 등을 소재로 빠짐없이 개헌을 추진했으며, 대선 때마다 각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었다. 변화에 맞지 않는 ‘낡은 옷’이므로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박 전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 정략적 속내로 추진되는 경우 역시 적지 않았다.

대선을 8개월가량 남겨둔 지금도 어김없이 개헌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물꼬를 넓혀 놓은 것이 이른바 ‘이준석 현상’이라는 점이 다르다. 정치적으로 청년 세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청년 지도자가 약진했는데 정작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이는 40세 이상으로 묶어 놓은 헌법 조항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야 가릴 것 없이 30대(혹은 20대) 대통령이 가능하도록 개헌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개헌행 열차의 강력한 엔진이 장착된 셈이다.


열린 틈새를 통해 오랫동안 논의돼 왔던 메가톤급 내용들이 테이블 위로 오르고 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토지공개념 개헌을,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개헌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시기적으로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통령 단임제 10여 개국 불과= 정략적 배경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개헌 그 자체의 필요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한국헌법학회가 지난달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개헌 찬성이 77%에 이르렀다. 찬성 이유로는 ‘대통령 또는 국회의 권한이나 임기를 조정하기 위해’가 ‘새로운 기본권 등 인권 보장 강화’와 유사하게 가장 높게 꼽혔다.


세계적으로 대통령제 국가는 90여 개인데 이 중 대부분이 연임제나 중임제를 실시하고 있다. 단임제 실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10여 개 국가에 불과하며 대체로 중남미 국가들에 집중돼 있다.


무엇보다 5년 단임제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이 다음 선거에서 평가받지 못한다는 단점을 지닌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들은 대선이 있던 마지막 해(5년 차)에 모두 탈당한 바 있다. 장기적으로 국가의 미래 전략 과제를 수행할 수 없는 한계도 존재한다.


◆공공과 사유재산권 충돌…토지공개념 개헌 가능할까= 경제적으로는 토지공개념이 가장 큰 화두로 여겨진다. 헌법 122조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애매하다. 토지공개념을 명시했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이어져 왔으며, 노태우 정부 당시 도입했던 토지공개념 3법 중 택지소유상한법과 토지초과이득세법은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이 전 대표는 "우리나라의 자산소득 격차가 세계적으로 심한 편"이라며 이를 해소할 방편으로 토지공개념 개헌을 들고 나온 것이다. 대선 출마를 검토 중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의 재산권 보장 내용과 충돌할 수 있다는 시각이 많아서 논란은 불가피하다. ‘공공’을 강조하다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으며, 결국 과도한 세금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우려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면 재산권 침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법률로 시대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밖에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본적 권리의 강화와 생명권, 책임총리제, 국회 의석의 투표자 비례성 원칙, 경제민주화 등 광범위한 내용들이 개헌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권 교체기 ‘개헌 시기’ 관건…일단 닻 올리면 ‘블랙홀’= 개헌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개헌은 국회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발의로 제안될 수 있으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대선 유력 주자들의 입장이 중요한데 여권에서는 1위 자리가 여전히 견고한 이 지사가 반대하고 있다. 블랙홀에 비유되는 개헌이 현안으로 떠오를 경우 여론의 향배를 가늠하기 어렵다. 경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개헌을 얘기하는 것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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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입장에서도 개헌이 되면 이후 각론은 거대 여당이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개헌은 정권 연장을 위해 꺼내 드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다음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물어서 추진할 문제"라고 말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개헌하기엔 늦었고 국면 전환의 꼼수로 보일 수 있다"면서 "개헌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 여야 유불리가 있고 셈법이 다르기 때문에 그동안 합의가 안 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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