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섭의 금융라이트]금융사를 갉아먹는 '독'…대마불사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용어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대마불사(大馬不死)’를 아시나요. 바둑에서 넓게 연결된 돌들을 ‘대마’라고 하죠. 대마는 몸집이 크기 때문에 상대방의 공격에 잡힐 리가 없다는 믿음을 대마불사라고 합니다. 실제 바둑 경기에서도 위기에 몰렸던 대마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역전의 계기가 되는 장면이 펼쳐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대마불사는 바둑 용어뿐 아니라 경제용어이기도 합니다. 특히 대형 금융사에 치명적인 존재로 개혁의 대상입니다. 대마불사는 왜 금융사의 ‘독’일까요?
금융사가 대마불사의 믿음을 가지면 순식간에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대형 금융사에는 많은 고객의 예치금이 몰리고, 이 돈은 고객과 기업의 대출금으로 활용됩니다. 몸집이 큰 만큼 ‘우린 파산할 리가 없고, 위험해지면 국가가 도와줄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 쉽죠. 이러한 사고는 건전한 영업보다 수익성이 크고 위험한 사업을 마구 펼치는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기 쉽고요. 대마불사가 은행과 기업을 무너뜨리는 독이 되는 겁니다.
한국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대마불사가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느껴야 했죠.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과 배찬병 상업은행장은 1998년 6월 18일 퇴출 대상이 된 기업 55개를 발표합니다.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5대 그룹 계열사 20개도 포함돼있었죠.
이들에게 돈을 빌려줬던 당시 한국의 5대 시중은행(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신탁은행)은 모두 부실해져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대기업들이 빚을 잔뜩 지고 부실한 경영을 펼치는데도 금융기관이 계속해서 대출을 실행해주며 부실 위험이 커졌죠. 결국 은행을 정리하기 위해 정부는 세금과 빚으로 조성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습니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도 마찬가집니다. 미국의 글로벌 대형 금융사였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하면서 경제위기가 시작됐죠. 신용등급이 달랐던 채권을 복잡하게 묶어 팔았던 월가의 위험한 경영이 원인이었습니다. 다른 금융사들까지 파산위험에 처했고 경제가 무너질 상황까지 처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1조 달러대 구제금융을 실시해야 했습니다. 대형 금융사였던 씨티그룹이나 세계 최대 보험사였던 AIG가 국민의 자금을 받았죠. 당시 국민과 언론의 많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위험한 경영을 펼쳐 부도 위기에 처한 회사를 정부가 세금으로 살려주면, 기업과 경영진이 대마불사를 더 굳게 믿을 거라는 비판이죠.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나라라면 기업이 가진 ‘대마불사’ 신념을 미리 제거할 필요가 생긴 겁니다.
이후 각국 정부와 세계 금융기관들은 대마불사를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사에 자리잡힌 대마불사를 어떻게 개혁할지 논의하기 시작했죠. IMF는 2014년 '글로벌 금융안정 보고서'를 통해 여전히 은행들이 정부의 암묵적인 보조금을 받으며 대마불사의 믿음을 다지고 있다는 취지로 경고했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자국의 금융당국이 부실한 대형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규제를 강화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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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도 대마불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제시됐었습니다. 건전성과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정리제도를 개혁하는 게 골자였죠. 최근 예금보험공사가 공개한 금융리스크뷰에 실린 ‘대마불사 개혁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대형금융회사의 위험 추구행위가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조현석 예보 선임조사역은 “국내 대마불사 개혁의 추가 이행을 위한 규제도입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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