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군사전문기자]5월의 6·25 전쟁영웅에 서기종 육군 일병이, 5월의 독립운동가에 장매성(1911∼1993)·박옥련(1914∼2004)·박현숙(1914∼1981)·장경례(1913∼1997) 선생이 선정됐다.


30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서 일병은 1951년 5월 경기도 용문산 전투에서 6사단 2연대 3대대 10중대 소속 정훈병으로, 중공군의 공세에 퇴각하는 중대원들을 독려해 빼앗긴 고지를 재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월 19일 전투에서는 서 일병이 중공군 공격에 맞서 앞장서 진지를 뛰쳐나와 공격하자 용기를 얻은 중대원들이 필사적으로 백병전을 펼친 끝에 빼앗긴 고치를 되찾았다.

이튿날 중공군의 2차 공격으로 자동화기 사수가 적탄에 맞아 쓰러지자 서 일병은 자동화기를 대신 잡고 선 채로 사격을 개시, 온몸에 적이 쏜 7발의 총탄을 맞았다. 이를 목격한 중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항전한 끝에 진지로 침투한 중공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결사 항전으로 임무를 완수한 서 일병은 병사로서는 이례적으로 1951년 7월 미국 은성훈장을 받았다.


장매성·박옥련·박현숙·장경례 선생은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1928년 11월 여성 항일운동 비밀결사인 ‘소녀회’를 결성하고, 남학생들이 주도하는 독서회와 연대 활동을 펼쳤다. 이듬해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부상 학생을 치료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30년 1월 광주여고보에서 구속 학생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험을 거부하고 백지 답안지를 제출한 ‘백지동맹사건’에 연루돼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일본 경찰이 광주학생운동 관련자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소녀회가 발각되면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고, 장매성 선생은 1년 2개월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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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이들은 광주여고보의 후신인 전남여자고등학교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장매성·박옥련·박현숙·장경례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추서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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