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독서] 조선에도 CSI와 3심제도는 존재했다
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
안음현은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일대다. 1751년 음력 6월18일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기찰군관 두 명이었다. 이름은 김한평과 김동학. 270년이 지난 오늘날 이름이 기억되는 역사적 인물들은 아니다. 사건의 파장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공권력을 상징하는 기찰군관의 두 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에 동헌은 발칵 뒤집혔다.
이상호가 쓴 ‘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은 추리소설처럼 어느 여름날 오후 돌발적으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생동감이 넘치는 사건 조사 과정 역시 추리소설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이 책은 허구가 아닌 실제 있었던 역사를 기록한다. 중앙이 아닌 지방의 이름 없는 이의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주류의 역사는 아니다. 저자는 내털리 제먼 데이비스가 지은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읽으면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밝혔다. 마르탱 게르는 16세기 프랑스의 소작농, 그를 사칭한 이를 둘러싼 재판의 기록을 모아 당시를 그대로 복원한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 미시사 연구의 방법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콘텐츠가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사례라고 저자는 썼다.
‘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이 가는 방향도 이와 같다. 미시사로서 지방의 한 살인사건을 통해 1751년 영조 27년의 조선 사법제도를 생생하게 그린다. 이 살인사건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의 형사 시스템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이유다. 일례로 당시 살인사건 조사에서 현장검증을 할 때 의생, 율관과 함께 검시를 할 ‘오작인’을 반드시 대동해야 했다. 의생이나 율관이 의료지식과 법률지식으로 보좌했다면 오작인은 직접 시신을 만지면서 검시를 진행하는 일을 맡았다. 검시는 지방관의 일이었지만 지방관이 직접 시신을 닦고 상처 크기를 재며 사망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기에 수령의 손과 발이 될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들이 바로 오작인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또 "현청에 소속되지 않은 인물들 중심으로 ‘검시 참여인’(참검인)들도 모아야 했다. 특히 살해당한 김한평과 김동학의 가족이나 친척은 필히 입회시켜야 했다"고 썼다. 참검인들은 함께 움직여야 했고 잠시라도 그 자리에서 이탈할 수 없었다. 이들은 검시를 할 동안 타인을 만나지도 않고 뇌물도 받지 않겠다는 서약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검시가 끝난 후에는 검시 관련 서류에 수결을 함으로써 객관성을 확인해줬다. 용의자를 신문할 때 쓰는 ‘장(杖)’의 규격, 때리는 횟수와 부위도 정해져 있었다. 사인을 교차 확인하기 위한 ‘복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동 신문인 ‘동추’를 포함한 3심제도도 확립돼 있었다. 게다가 사형을 명하는 것은 국왕만이 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살인사건의 경우 왕명을 받은 관리가 직접 사건을 조사해야 했고, 수사 과정과 신문, 검시 결과 등을 비롯한 모든 내용들은 반드시 조정까지 보고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보는 ‘네 죄를 알렷다’ 식의 우격다짐 재판은 오해라고 얘기한다.
동시에 ‘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은 민초들의 일상의 기록이 오늘날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다. 이 책은 사건 당시 경상감사를 지낸 조재호의 업무일지 ‘영영일기’에 포함된 ‘영영장계등록’의 글 한 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건 현장에 관한 묘사와 검시 보고서, 신문 기록은 긴박감이 넘친다. 당초 범행의 목격자인 기찰군관 김태건과 구운학이 각각의 신문 과정에서 서로를 진범으로 지목하면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안음현 살인사건의 사례를 통해 억울한 죽음과 그로 인한 2차 피해를 막으려는 조선의 국가 시스템을 들여다 본다. 저자는 조선시대 사법시스템의 존재와 그것의 적용 여부를 안음현 살인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살펴보고,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만으로도 고도의 열정을 가진 지방관의 노력과 유사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조선의 사법제도에 주목한다. 이는 현대의 기준으로 봐도 공정성 확보에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으며 조선 왕조가 500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 역시 이 같은 시스템에서 나왔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안음현 살인사건이 결말로 치닫으면서 민초들의 일상을 살펴야 역사의 전모를 온전히 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의도도 뚜렷하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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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이상호 지음/푸른역사/1만3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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