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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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신공을 발휘하다 손을 다쳤다. 응급실에 가니 코로나19 시절 요리하다 다치는 사람이 많다며 "잘 꿰매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 마음이 노곤하게 풀렸다. 말이란 그런 거다.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듣는 이에게 희망이 되는 말이 있다.


왜 그것밖에 못해. 넌 늘 왜 그렇니? 이런 말은 듣는 이를 위축시킨다. 당장엔 따끔하지만 멍한 정신을 때리는 주사 같은 말도 있다. 말에는 생명이 있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생각 없는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응급실의 길고 불편했던 시간이 고마운 말 덕에 그리 나쁘지 않게 기억에 남아 있다.

돌아와 일상을 이어간다. 몸의 작은 부분이 다쳤을 뿐인데 설거지, 세수, 컴퓨터 작업, 하다못해 책장을 넘기고 단추를 여미는 일도 불편하다. 나를 지금껏 지탱해 준 이 몸이 얼마나 신비로운 조화 속에서 작동됐는지, 무사히 살아온 하루하루가 다 기적 같다. 아침상을 매일 받아먹던 남편이 혼자 아침을 차려 먹는다. 다친 손을 통해 그간 잊고 있던 ‘돌봄’의 의미를 새삼 떠올린다.


어릴 때는 아버지, 결혼해서는 남편, 늙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예기’의 ‘삼종지덕(三從之德)’은 이제 옛말이 되었지만 어릴 때는 엄마, 결혼해서는 아내, 노년이 되면 딸이 맡는 ‘돌봄 노동’의 방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돌봄 노동은 몸에서 손이 하는 역할과 같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시되는 돌봄 노동은 가정은 물론이고 사회나 국가로 확장해 보면 경제적·성적으로 매우 불평등한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결혼하지 않은 딸은 부모의 노후 보험이고 저소득층 50대 여성과 이주 여성 돌봄 종사자들은 국가의 보험처럼 자리 잡았다.


몸에서 손이 하는 일처럼 한 사회의 돌봄 노동은 작지만 중요한데 우리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심지어 비천하다 여기며 성적·경제적 불평등을 당연시한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생산활동이 돌봄 노동자의 보이지 않는 헌신 덕분에 유지되고 있음에도 우리는 돌봄 노동이 이뤄지는 체계에 무심하다. 돌봄 노동자들은 몸에서 손이 받는 대우처럼 사회에서 매우 홀대받는 위치에 있다. 게다가 돌봄 노동은 정서적이고 도덕적 특성에 기대어 희생이나 봉사로 자주 포장되고, 돌보는 이는 무한 희생을 강요받는다.


다친 손을 보며 생각한다. 살아가는 단계마다에서 우리가 받았던 보살핌, 엄마·아내·딸이 주로 감당했던 그 손길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고. 돌봄 노동 또한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전문적인 노동 영역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혼인율이 감소하고 1인 가족이 늘어나는데 복지 정책은 여전히 전근대적 가족관에 근거해 수립되는 현실 또한 돌아봐야 한다.


돌봄 노동의 공적 체계를 세우는 일은 개인의 생애 주기, 가족과 사회의 구성방식을 변화하는 세계의 현재적 시점에서 새롭게 살피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돌봄은 누구나, 전 생애 주기에서 필요한 일이다. 드러나지 않는 여성의 희생에 기댔던 돌봄 노동을 저평가의 굴레에서 탈출시키는 인식과 정책 변화가 절실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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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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