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폐지된 정당 합동연설회 사라진 옛기억, 선거운동 방식 변화
초등학교 유세장 모인 구름 같은 청중, 선거 때만 볼 수 있는 진풍경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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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이들에게 선거는 하나의 축제였다. 특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서 열리는 정당 후보 합동 연설회는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했다. 합동 연설회를 알리는 벽보가 담벼락과 전봇대에 붙게 되면 동네 전체가 들썩였다. 초등학교 주변 합동 연설회 현장에는 막걸리에 파전, 번데기에 냉차까지 먹고 마실 거리가 풍부했다.


합동 연설회 시작 전에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연설회 도중 동네 지인들과 만나 막걸리를 나누다 보면 합동 연설회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합동 연설회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다. 실제로 노인들부터 중장년층, 학생, 아이에 이르기까지 합동 유세를 보고자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모였다.

선거 정보를 얻고자 하는 유권자는 어떤 후보가 말을 잘하는지, 인물이 괜찮은지를 보는 게 합동 연설회 방문의 목적이라면 아이들은 왁자지껄한 그 공간을 느끼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사실 정당 후보 합동 유세는 훈훈하고 정감 어린 풍경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듣기 민망한 발언부터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까지 이른바 볼 것, 못 볼 것을 다 봐야 하는 공간이었다.

일부 후보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선거판을 바꿔보고자 ‘흑색선전’을 활용하고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행동도 했다. 합동 연설회에서 그런 발언이 나올 때마다 이해 당사자들의 고성이 오갔고 곳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거에 합동 유세 현장은 후보자들의 ‘실력’을 직접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당시는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를 활용한 선거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부착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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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 유세의 중요성이 커지다 보니 폐해도 적지 않았다. 합동 유세 현장의 박수 소리가 곧 선거 판세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지표였다. 후보들은 자신에 대한 여론이 더 호의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이른바 박수 부대의 동원이다.


후보가 연단에 오르면 동원된 박수 부대들이 열렬히 환호하고 경쟁 정당 쪽 박수 부대들은 냉담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반복됐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연설이 끝나면 동원된 박수 부대들과 지지자들까지 썰물처럼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덕분에 다음 연설자는 흙먼지 풀풀 풍기는 썰렁한 공간에서 연설을 이어가야 했다. 정당의 조직 동원력이 약한 후보는 불리했다.


2000년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합동 연설회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2004년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의 합동 연설회 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합동 연설회는 장단점이 뚜렷한 제도였다. 돈 선거의 주범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직접 민주주의의 맛을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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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후 선거운동의 중심축은 대규모 군중이 동원되는 행사보다는 대중 매체와 인터넷, SNS 등을 활용한 유세로 바뀌었다.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단은 더 늘어났지만 흑색선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초등학교 합동 연설회 폐지가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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