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 남산 드라마센터의 깊이있는 무대와 어울리는 연극 '왕서개 이야기'
27~28일 서울문화재단 유튜브·네이버TV에서 온라인 상영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연극 '왕서개 이야기'를 보면서 새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의 무대가 꽤 깊다는 생각을 했다.
드라마센터는 1962년 건립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연극전용극장이다. 무대는 고대 그리스 야외 원형극장을 본떴다. 연극을 위한 공간이라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단차가 좋다. 뒷좌석에 앉으면 멀리서가 아니라 깊게 극을 본다는 느낌이 든다.
'왕서개 이야기'는 한 사내가 마음 속 깊이 오래 품어온 응어리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오래 되고 깊은 드라마센터 무대와 잘 어울렸다.
왕서개는 일본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물건 배달 일을 하는 중국인이다. 그는 원래 만주에 살았다. 매잡이였다. 1930년대 만주를 침략한 일본군 때문에 아내와 딸을 잃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건너왔다. 왕서개가 21년 만에 자신의 딸과 아내를 살해한 일본군들을 한 명씩 만나는 일이 극의 뼈대다.
극은 묘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극 중 가해자는 일본인, 피해자는 중국인이지만 정작 극은 한국에서 만들어졌고 극을 보는 관객도 한국인이다. 역사적으로 한국도 일본에 짓밟혔지만 극 상에서 한국의 비극은 배제돼 있다. 이러한 설정은 극을 보는 한국 관객들의 시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인 왕서개가 가해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묘하다. 왕서개가 차례로 만나는 일본인들은 아내와 딸을 살해한 불구대천의 원수다. 그런 그들에게 왕서개는 차를 건넨다. 정말 좋은 차라며. 원수를 만났을 때 떠올리게 되는 복수의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왕서개는 복수를 바라지 않는다. 왕서개는 차를 건네며 그들에게 한 가지만 묻는다. 어디서 아내의 시신을 찾을 수 있냐고.
하지만 왕서개의 의도와 다르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본군들에게 복수 아닌 복수가 된다. 왕서개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일본군들은 괴로워한다. 그들에게도 전쟁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으로 관객들에게 비쳐진다.
왕서개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일본군들의 전쟁 후 삶은 다양하다. 나카노는 이미 죽었지만 임팔은 외무성 관료가 됐고 릴리는 반신불구가 돼 침대에 누워서만 지낸다. 가장 성공한듯 보이는 임팔의 삶과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릴리의 삶은 대비된다. 하지만 임팔은 왕서개에게 목을 치라며 자신의 검을 건넨다. 반면 릴리는 왕서개가 총을 겨눴을 때 쏘지 말라며 절규한다.
가장 온전한 삶을 사는듯한 임팔은 죽여달라 하고,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릴리는 살려달라고 하고. 역설적인 이 두 장면은 끔찍한 혼돈으로 보인다.
살아있지만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없고, 그래서 때로 삶을 포기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살고 싶다는 한 줌 욕망이 꿈틀거리는 혼돈. 이러한 혼돈은 전쟁 가해자인 그들도 결국 피해자임을 보여준다.
왕서개는 이를 아는듯 차를 건네며 그들을 이미 용서한듯한 태도를 취한다. '왕서개 이야기'는 전쟁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을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삶과 전쟁에 대한 깊이있는 생각을 끌어낸다.
연극평론가 모임인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이하 공이모)이 2020년도 '공연과이론 작품상'으로 '왕서개 이야기', 한국연극평론가협회(회장 김미도)도 '왕서개 이야기'를 '마른 대지', '우리는 농담이(아니)야'와 함께 '올해의 연극 베스트3'으로 선정했다. 월간 한국연극도 '2020 공연베스트7'에 '왕서개 이야기'를 포함시켰다.
서울문화재단은 27~28일 '왕서개 이야기'를 서울문화재단 공식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sfacmovie)㏏과 네이버TV(tv.naver.com/sfacmovie)에서 상영한다. 지난 23일부터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올해 시즌 프로그램 4편을 상영하고 있다.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23~24일)’,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25~26일)' 상영을 마쳤고 오는 29~30일에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무대화한 '휴먼 푸가'를 상영한다.
'왕서개 이야기'는 서울문화재단이 드라마센터에서 선보인 마지막 창작 초연극(10월28일~11월8일 공연)이었다. 드라마센터의 소유주는 서울예술대의 학교법인인 동랑예술원이다. 서울시는 2009년부터 서울예술대로부터 드라마센터를 임대했으며 서울문화재단이 공공극장으로 위탁 운영해왔다. 하지만 서울시와 서울예술대가 올해를 끝으로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오를까 떨어질까 불안하다면…"주가 출렁여도 따박...
연극계에서는 드라마센터를 공공극장으로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드라마센터를 설립한 동랑 유치진이 부당하게 드라마센터를 사유화 했다는 이유에서다. 유치진이 정부 특혜를 받아 드라마센터를 설립한 뒤 그 소유권을 편법으로 동랑예술원에 넘겼다는 것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