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이 여성으로 채워지길 바랐다. 취재에 열중하면 기자도 어설픈 정치인이다. 밤늦은 술자리, 고향과 학교 선후배 찾기. 스스로 그런 문화에 함몰되는 모습을 깨닫고 반성했다. 어찌하면 근본부터 고칠수 있을까. 여성들이 정치권 진출 때 내세우는 논리들이 있다. 패거리 문화 배격, 청렴, 따뜻한 모성애. 하지만 실제 결과는 달랐다. 성공했다는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의 단점을 털어내지 못했다.
여성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정부나 정치권은 그들 결정의 당위성 확보를 위해 위원회를 양산한다. 각계 위원 선정에 여성 할당이 있다. 보통 20~30% 정도. 몇몇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남성 중심사회를 체감했다. 낮 회의는 요식절차였다. 적당한 토론과 주어진 결론의 추인. 핵심은 저녁 회식이었다. 회의에서 못한 깊숙한 얘기가 이어진다. 국회와 정당판, 행정 부처의 운영 양태 역시 비슷했다. 여장부 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선두주자가 되기 힘들었다. 정부 부처 한 여성 고위관리는 "남자에 지기 싫어 토하면서 술자리를 지켰다."고 회고했다. 질펀한 술자리로 상징되는 마초사회. 그에 끼지 못하면 정보와 영향력에서 소외된다.
여성 리더십을 더욱 고민하게 만든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전은 박빙이었다. 당시 박 후보의 최측근이 넌지시 알려준 말. "막판에 여성임을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반신반의했다. 여성을 부각시켜 득표에 유리했던 경우를 못 보았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박 후보는 당선됐다. 잘 했더라면 여성 정치시대를 활짝 열었을 것이다. 권좌에 오른 박 전 대통령은 평범하지 않았다. 은둔, 폐쇄의 공주였다. 부친이 물려준 권위가 선거전에서 약이었지만 집권 후에는 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레이저 눈빛에 거부감이 들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인도의 인디라 간디,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여성 지도자들도 남성 찜쪄먹을 정도로 강했다. 국내를 돌아보니 박 전 대통령 뿐이 아니었다. 요직을 맡은 상당수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게 고집스러웠다. "여자라서 유약하다."는 세평을 듣기 싫어했다.
원하건, 원치않건 모든 분야가 '남녀 반반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여성 서울시장 탄생을 주목하는 이유다. 내년 4월 보궐선거가 치러지게된 배경 때문에 여성에게 우선권이 있는 듯 흘러간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가 이달초 서울 유권자를 대상으로 했던 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오차범위 안에서 선두를 달렸다. 2위는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 이어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도 앞쪽에 포진했다.
여성 후보들이 남성 중심 사회의 거부감에 기대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다가 남성 정치를 닮아간다면 들러리가 될 뿐이다. 여성 정치인이 강경하고, 외골수라는 평을 안 들었으면 한다. 이념에 유연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통한 진영 정치의 청산. 새로운 타협 문화를 선도하길 바란다. 그러면서도 민생 정책에서는 단호함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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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토끼를 잡는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남성 정치인이 못했던 것을 여성이 보여줘야 한다. 소통, 통합과 실용을 실천한 '엄마 리더십'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코로나19 대응을 잘 해서 스타가 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우리도 이제 여성 정치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해야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정치권 과반을 여성으로 채우는 시기를 앞당기는 촉매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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