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경찰청장 "치안 세계적이지만 예방은 후진적…사전대응 위한 법적권한 필요"
스토킹·아동학대 등 막기 위해선
사전분리 가능하도록 법개정돼야
일각서 제기한 공권력 남용 우려엔
"최근 사례보면 소극적 대응이 문제
남용 문제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광화문 차벽설치 놓고 사회적 논란
"고민 무척 많았지만 불가피한 선택"
[대담=아시아경제 신범수 사회부장, 정리=이관주 기자, 사진=문호남 기자] 경찰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평범한 국민이 생각하는 경찰의 대표적 역할은 '범죄자 검거'일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신속하게 출동해 범죄자를 체포하고 면밀한 수사로 그를 단죄하는 일이다. 경찰의 초동조치가 잘못돼 피해를 키운 경우 사회적 공분을 사는 것도 이 같은 '기초 역할'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치안 유지다. 대규모 집회·시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거나 교통관리를 잘 해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유지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경찰이 100년의 역사에서, 명과 암이 모두 있긴 하나 줄곧 해왔던 활동이다.
그리고 맞은 새로운 100년, 경찰은 역사적 전환기에 서있다. 경찰 역사상 처음으로 온전한 수사권을 갖게 되며 자치경찰제 도입 등 구조적 변화도 목전에 두고 있다. 경찰의 존재 이유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 같은 대격변 시기 경찰 수장에 오른 김창룡 경찰청장이 제시하는 새 패러다임은 '예방적 경찰활동'이다. 범죄 요인을 선제적으로 찾아 제거하는 예방활동으로 경찰의 역할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지난 7월24일 취임해 10월31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김 청장을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만났다. 김 청장은 취임 이후 소회와 예방적 경찰활동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진솔하게 풀어냈다.
"경찰활동 중심축, 사전예방으로 돌리자"
'예방적 경찰활동'은 김 청장을 대표하는 단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임사부터 경찰의 날 기념식과 국정감사 인사말, 전 세계 경찰 관계자들이 모인 국제경찰장협회(IACP) 콘퍼런스 연설까지 '예방'이라는 메시지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역대 어느 경찰청장보다 김 청장이 유달리 예방치안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엔 범인 잡는 것으로 경찰의 역할이 끝났다. 지금은 피해자 보호를 강조하는 변화도 있었지만 이 역시 사후대응 측면이다. 그러나 생명ㆍ신체ㆍ재산ㆍ인권은 한 번 침해되거나 손실되면 복구나 원상회복이 정말 어렵다. 대형 재난과 범죄에는 항상 징후가 있다. 이를 세밀하게 파악해 위험 요소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하는 게 앞으로 경찰의 핵심 임무가 될 것이다."
안인득의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을 보자. 사건 발생 전 안인득의 각종 소란·다툼 등 개별 사건 하나하나는 사소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종합적으로 살펴봤다면 위험성이 큰 행위로 볼 수 있었고 사전 예방도 가능했을지 모른다고 김 청장은 예를 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경찰이 추진 중인 '지역안전순찰·탄력순찰'과 형사들의 우범지대 점검, 정보경찰의 공공안녕 위협 정보 수집 등은 모두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찾아내 제거한다는 '김창룡표 예방치안' 정책의 일부다. 치안의 세계적 기준도 예방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경찰의 역할을 '범죄 투사(crime fighter)'에서 '문제 해결자(problem solver)'로 바꿔야 한다는 김 청장의 IACP 연설에 세계 각국 경찰이 공감한 이유이기도 하다.
"치안유지 세계적 수준…그러나 예방 분야 아직 갈 길 멀어"
김 청장은 예방적 경찰활동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선진국에선' '선진국의 경우'라는 말을 자주 꺼냈다. 한국의 치안 수준이 세계적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왜 스스로 평가절하하냐고 물었다.
"수사하고 검거하는 '경찰 작용'은 세계 최고인 게 맞다. 그러나 선제적·예방적 법 분야의 시스템을 보면 아직 후진국인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김 청장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선제적 경찰활동을 뒷받침할 법과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바로 수사권이다. 김 청장은 "경찰은 실질적으로 검찰 지휘를 받는 범위 내에서만 수사해왔다"며 "독자적 수사권이 없는 경찰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말했다.
위험 상황이 임박했지만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 경찰은 '과잉 대응'과 '예방 활동'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이를 제도적으로 규정하는 시스템은 미비하다. 대표적인 게 '스토킹처벌법'이다. 김 청장은 "스토킹 범죄가 강하게 예측되는 경우 경찰이 사전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경고도 하며 제지도 하는 예방적 권한을 부여하는 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스토킹 처벌법을 비롯해 가정폭력처벌법, 아동학대처벌법, 경범죄처벌법, 실종아동법, 실종성인수색법, 범죄예방기반조성에 관한 법률, 정신건강복지법, 치안산업진흥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10개 법안의 제ㆍ개정을 추진 중이다. 가정폭력처벌법의 경우 현재 '범죄 재범 우려'로 돼 있는 임시조치 요건을 '발생 우려'로 바꿔 경찰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공권력 남용' 우려에 대해서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김 청장은 "최근에 문제된 사례들을 보면 거의 소극적 대응이 문제였지, 남용 문제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산 '양천 유아 사망사건'을 예시로 들었다. 경찰이 3차례나 아동 학대 신고를 받았음에도 결국 16개월 된 여아는 숨졌다. 김 청장은 "아동학대 가능성이 있지만 가족이 강하게 항의하면 경찰관은 일단 물러설 수밖에 없다"며 "적극적·선제적 경찰 활동을 해도 신분에 불이익이 없도록 법으로 확실히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결국 예방적 경찰활동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정치권을 향한 요구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경찰이 국민적 공감대 없이 스스로 영역을 확대시키면 '범죄도 없는데 미리 나서서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돌아온다"며 "지금 경찰의 요구는 국민의 평안한 일상을 위한 것인 만큼 국민이 예방적 경찰활동의 중요성을 요구해야 법 개정도 가능하다"고 힘줘 말했다.
"광화문 차벽, 고민 많았지만…불가피한 선택"
김 청장은 취임 후 집중호우·태풍 등 자연재해가 잇따르자 애를 태웠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도 대응해야 할 중요 이슈였다. 수사권조정 대통령령 제정안을 두고 법무부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개천절 집회' 대응을 위해 설치한 광화문 차벽이었다. 경찰은 10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청광장까지 경찰버스 500여대를 투입해 시위대의 진입을 원천 차단했다. 보수단체의 8·15 집회 이후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내놓은 강력 대응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 또한 감수해야만 했다.
차벽이 유일한 선택지였을까. 김 청장은 "고민이 무척 많았다"고 토로했다. 전염병 사태에서 시민 간, 시민과 경찰 간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강조하면서 "전염병을 막아야 한다는 필요성과 8·15 집회가 재현되면 걷잡을 수 없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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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논란과는 별개로, 차벽을 세워야만 했던 김 청장의 고심에도 '예방을 중심에 두는' 그의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는 "취임 이후 예방적 경찰활동과 공정한 법집행, 책임감 이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가족·친구·이웃의 일처럼 절박한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진정성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인정과 공감을 받고, 이것이 축적되면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경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사진=문호남 기자 munon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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