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불타오르네' 울산 화재 이재민 조롱…왜?
도 넘은 비난…이재민 "저주 붓는 것 같아"
전문가 "타인고통 공감 결여…불안정한 사회 단면"
[아시아경제 한승곤·강주희 기자] 지난 8일 울산시 남구에 위치한 33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이재민을 조롱하는 내용이 담긴 메모가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
메모지에는 방탄소년단 곡 '불타오르네' 등이 적혀 화재로 목숨을 잃을뻔한 사람들이 아예 죽었어야 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모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다른 메모 내용 대부분 역시 '불'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재민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구조 활동에 나선 소방관들까지 조롱한다는 지적이 있다. 전문가는 타인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현상이며 불안정한 사회 단면을 보여준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우려했다.
지난 12일 이재민들이 임시로 묵고 있는 남구 소재의 스타즈 비즈니스호텔 객실에서 이들을 조롱하는 호텔 메모지가 발견됐다.
자신을 화재 아파트 주민 중 한 명이라고 밝힌 A씨는 14일 페이스북에 "도를 넘은 악의적인 메시지가 담긴 메모를 발견했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해당 메모를 찍은 사진 공개했다.
'이재민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라는 제목의 메모지에는 가수 오마이걸 '불꽃놀이', 태연 '불티', 방탄소년단 '불타오르네', 블랙핑크 '불장난' 등 불과 관련된 노래 7곡이 적혀 있었다.
A씨는 "불 속에서 구조됐던 저희를 향해 이런 리스트를 적어뒀다는 게 도를 넘은 악의로만 느껴진다"며 "주민 대다수가 잠도 못 자고 후유증으로 힘들어하고 있고, 여러 글과 댓글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이어 "그런 와중에 이런 메시지는 저희를 향해 저주를 붓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고, 호텔에 이런 걸 적어둔 사람이 있다는 게 무섭다"며 "직접적인 위해가 없어 신고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불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불을 내지 말아 달라"라고 호소했다.
이재민들은 앞서도 시에서 '호텔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일부 누리꾼들로부터 악의적 댓글, 비난에 시달린 바 있다.
비난을 하는 누리꾼들은 "천재지변, 자연재해도 아닌데 호텔 지원을 왜 해주나", "보험도 들어있을 텐데 세금으로 굳이 이재민들을 지원해주는 게 아깝다", "다른 재난 피해자들과 달리 대우가 다르다", "호텔 지원은 공평하지 않다. 특혜 아닌가" 등의 이유를 들며 이재민들을 향한 비난을 계속했다.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울산시장은 세금으로 호텔숙식 제공 철회하라', '울산시의 세금을 지켜주세요' 등 호텔 지원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호텔 지원에 대한 찬반 논쟁이 확산하자 송철호 울산시장은 화재 관련 브리핑을 통해서 "이번 화재 피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예방해야 하는 재난 상황과 겹쳤고, 체육관 등 단체생활 공간을 제공하면 감염병 전파 우려가 크다"며 지원 이유를 밝혔다. 시는 또 해명자료를 내고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이재민 재해구호기금 지침'에 따라 적법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재민들을 향한 비난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피해자 중에 얼마나 높은 분이 계시면 호텔 지원까지", "고급 아파트 주민들이 아니라면 호텔 지원을 했을까" 등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저 동네는 학교 체육관 같은 곳이 없나?", "호텔 지원받았으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징징거리지 말아라" 등 모욕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재민을 향한 비난이 이어지자 시민들 사이에서도 '도를 넘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화마로 생활터전을 잃으신 분들에게 뭐 하는 짓인가. 정말 너무한 것 같다"며 "저 메모를 남긴 사람 꼭 처벌받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나"라고 한탄했다.
전문가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불안정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우려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비단 이번 사건 뿐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는 하나의 이슈가 생기면 그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과하게 관심을 갖고, 비난할 거리가 있으면 마녀사냥, 집단 공격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을 비방함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풀고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최근 이슈인 부동산 문제에 대한 불만, 억울함, 상대적 박탈감 등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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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교수는 이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성적 판단이 아닌 무차별적 비난이 가해지는 것은 불안정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며 "사회와 타인에 대한 신뢰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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