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가 그린 '포로들의 대이동'.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유태인들이 포로로 끌려나오는 모습을 그렸다.[이미지출처=뉴욕 유태인박물관 홈페이지]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가 그린 '포로들의 대이동'.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유태인들이 포로로 끌려나오는 모습을 그렸다.[이미지출처=뉴욕 유태인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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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구약성경에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마지막 민족국가인 남유다 왕국의 멸망기를 그린 예레미야서는 지금부터 2600여년 전인 당시에도 중동 정세가 얼마나 복잡한지 잘 보여주는 역사서로 유명하다. 주인공인 선지자 예레미야는 기도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민족의 존속을 기원해 '눈물의 선지자'라 불리지만 정작 기원전 6세기 남유다 왕국의 역사 속에서는 매국노로 낙인찍혀 있던 정객이었다.


예레미야가 매국노라 불린 이유는 그가 항상 바빌로니아와 절대 싸워선 안 되며, 오히려 그들에게 복속되는 게 주님의 뜻이라 설파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역사 속 그는 매국노이자 반역자로 내몰려 수차례 투옥되고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남유다 정권은 대외강경론자들이 장악했고, 특히 다민족국가인 바빌로니아를 적대시했다. 그들의 개방적인 문화가 이스라엘의 전통문화를 잠식해 유태교와 민족성을 아예 말살시킬 것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남유다 정권은 주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강대한 적을 만나도 멸망할 리가 없다며 백성들을 호도했지만, 이미 남유다의 운명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라는 당대 두 강대국의 손에 달려 있었다. 바빌로니아가 그때까지 직접적으로 남유다를 침공하지 않은 이유는 신의 가호보다는 남유다의 배후에 있는 이집트와의 전면전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예레미야가 바빌로니아에 복속돼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명확했다. 당시 이집트는 바빌로니아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강대국이긴 했지만 바빌로니아와 비교해 이미 국력은 기운 상태였다. 바빌로니아는 중동 주요 중심지역을 모두 점령했고, 군사력뿐 아니라 문화ㆍ정치적으로도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유다 정권은 바빌로니아와의 항전을 계속 주장했고,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도 대다수 강경 세력의 말을 좇아 바빌로니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바빌로니아는 이집트와의 전면전까지 각오하고 수십만 대군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했고, 이집트는 여기에 압도돼 개입을 포기하면서 예루살렘만 철저히 파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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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이 지난 오늘날, 이스라엘 정부가 중동전쟁의 주적인 아랍연맹의 대표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소식에 이스라엘 보수파들은 분노하고 있다.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은 여전히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완전한 합병과 함께 모든 아랍민족과 싸워 이기는 것만이 살길이라 외친다. 매일 예레미야서를 읽을 사람들이 그 역사적 교훈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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