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오죽하면 '포효하는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렀겠는가. 주식가격은 매년 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다. 1921년 8월부터 1929년까지 6배 상승했다. 1922년 이후 매년 20%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그러니 당시 주식투자는 빚을 내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매입 가격의 10%만 있으면 은행이나 증권회사로부터 나머지 90%를 차입해 주식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철강과 자동차 산업을 비롯해 빠르게 팽창하던 미국의 산업생산은 192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포화 상태에 다다랐다. 1차 세계대전과 유럽의 수요 때문에 높게 유지되던 농산물, 특히 밀의 가격 또한 수요 하락과 과잉 생산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업과 농부들은 손실을 감수하고 산출물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실업률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임금은 정체했다. 가계 빚과 은행의 상환불능 채권은 쌓여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1929년 8월부터 뉴욕연방은행이 이자율을 5%에서 6%로 인상했다. 주식가격이 1929년 9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신경질적인 매도와 주식시장의 붕괴가 시작된 것은 1929년 10월24일이었다. 목요일이었다. 그러나 시장붕괴를 염려한 관계기관의 개입으로 그 주는 지나갔다. 다음 주 월요일, 그러니까 1929년 10월28일 다우지수가 13% 하락했다. 소위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이다. 그다음 날도 다우지수는 그에 버금가는 12% 하락했다. '검은 화요일(Black Tuesday)'이다. 예금인출 사태가 나타났다. 대공황은 그렇게 시작됐다.
1933년 대공황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미국의 실업률은 25%였다. 그해 3월4일 미국 32대 대통령에 취임한 사람이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루스벨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국민의 일자리를 복원하고, 저축을 보호하며, 병자와 노인을 구호함으로써 번영을 도모하는 것이 첫 번째 우선순위임을 천명하고 농업과 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첫 100일 동안에 13개의 주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가운데에는 노동조합을 강화하고 시장의 유연성과 경쟁을 저해하는 법들이 포함돼 있었다.
뉴딜정책은 광범위한 사회개혁정책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운위되고 있는 '그린 뉴딜'과 같이 지출정책이라고 보는 것은 위험한 오해다.
그렇다면 지출정책으로서의 뉴딜 정책은 성공한 것일까? 뉴딜 이후 1930년대 미국의 실업률은 하락했으나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은 아니었다. 불황이긴 했으나 1938년 6월에는 20%였고 1939년의 월평균은 16.4%였다. 주식시장의 붕괴가 일어나고 10년이 지난 이후에도 대공황은 아직 진행형이었던 것이다. 지출정책으로서의 뉴딜은 실패한 정책이었다. 왜 그와 같이 회복이 느렸을까? 경쟁을 저해하는 입법 때문이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사정이 이와 같은데 뉴딜을 할 때인가? 지금 이 나라에서 정권과 그 옹호자들은 '그린 뉴딜'이 우리 경제의 모든 문제를 쓸어 가버릴 것처럼 떠들고 있다. 마치 세금을 함부로 쓰는데 중독된 것처럼 멈출 줄을 모른다. 정부가 헛발질만 하지 않는다면 전염병이 지나간 다음 우리 경제는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시장과 경제의 붕괴를 막는 것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보호하고 한계상황에 있는 가계를 돌보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다른 불필요한 일을 벌일 여유가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문재인 정부, 처음 들어서면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광기로 시작하더니 '그린 뉴딜'이라는 또 다른 광기로 기어이 나라 경제를 황폐화시키고 떠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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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옥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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