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부동산 잡으려고 행정수도 이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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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여권을 중심으로 16년만에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이슈가 부활했다. 3년간 22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아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자 여당 원내대표가 '부동산 문제 완화'를 내세우며 해묵은 이슈를 가져온 것이다. 2004년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시대가 달라졌다'며 밀어부칠 기세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참여정부의 작품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부처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취임 후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지만 헌법재판소가 '관습법'을 내세워 제동을 걸면서 무산됐다. 이후로도 세종시로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수많은 정부기관이 이전됐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청와대와 국회는 서울에 남았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수많은 공무원들은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카톡을 통해 회의와 소통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세종을 찾아야만 하는 사람들 역시 KTX 오송역에 내린 후 간선급행버스(BRT)로 갈아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즐길 거리문화가 없어 주말마다 '유령도시'가 되는 건 덤이다. 행정수도가 되기 위해 출범한 세종시는 여전히 반쪽으로만 남아있다.


그래서 그 반쪽을 채우기 위한 못다한 개혁의 완수가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사실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지지율이 날로 하락하는 지금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내드는 것은 자칫 '부동산 문제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오독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해법 차원에서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사안의 경중이 바뀐 것이다. 행정수도의 비효율 개선, 기능 정상화 등이 중점이 되어야지 부동산 대책이 주가 되어선 안된다.

아무리 정부가 '지방 내려가 사시라'고 해도 사람들은 놀기 좋고, 돈 벌기 좋고, 내 자녀를 교육시키기 좋은 곳으로 몰린다. 그 곳이 바로 서울이다. 입지적 장점이 행정수도 변경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자가 세종시 파견 근무를 했던 2018년, 주말이 되면 서울로 올라가는 젊은 공무원들 때문에 상가는 텅텅 비곤 했다. 미혼 기자들도 덩달아 '세종시에 있으면 우울증 걸릴 것 같다'며 별 일이 없어도 서울행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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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 세종시에서 만난 한 기재부 과장은 술자리에서 '자녀가 고등학생이 되면 서울로 집을 옮길 계획'이라고 털어놓았다. 왜냐고 물었더니 "학군이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시켜 좋은 선배·후배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서울에 몰리는 것은 거기에 청와대가, 국회가 있어서가 아니다. 청와대와 국회를 옮기는 것만으로 집값이 잡힌다면야, 전국 주요 시도에 청와대-국회 분원을 하나씩 만들어 1년씩 돌아가며 쓰는 건 어떤가. 전국 집값이 확 잡히지 않겠는가.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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