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학습만화로 '살아남기 시리즈'가 있었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사막에서 살아남기, 빙하에서 살아남기. 초등학생 아들이 살아남기 학습만화에 몰입할 때 어른인 나도 어린 시절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과학상식과 모험에 빠져들면서 극한 상황에서 용감하게 살아남는 상상을 즐기곤 했었다. 요즘에도 시리즈가 계속 나오는지 '미세먼지에서 살아남기,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 인공지능 세계에서 살아남기' 같은 제목이 눈길을 끈다.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은 주로 전쟁에서 살아남은 체험담을 들려주곤 했다. 어린 마음에 제일 걱정되는 일은 '피란길에 고아가 되면 어쩌나'였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피란을 가야 하나? 가족과 떨어지면 어떡하나? 나름대로 살아남을 궁리를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살아남는 자들의 이야기가 바로 역사다. 승리한 자, 살아남은 자들이 역사를 쓰기 때문에 아무리 찬란한 문화를 이뤘을지라도 패배하거나 살아남지 못하면 그들의 이야기는 그냥 전설로 묻히고 만다. 요즘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촉발된 격리된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하고 있다. 이 상황은 그동안 우리가 겪었던 경제위기나 전쟁과는 매우 다른 형태의 위기 상황이다. 위험 요소가 눈앞에 보이면 허리띠를 졸라매든 아니면 불끈 힘을 내서 헤쳐나가거나 싸워보기라도 할 텐데 코로나19 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보이지도 않는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가족을 보호하고 일터를 보호하려니 뭔가 해볼 재간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 엄청나게 변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경고했지만, 그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 와 닿지를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뜻하지 않게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성큼 다가서게 됐다. 전체 모습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 단면을 보게 된 것이다. 대면접촉 서비스의 불황, 비대면(언택트) 문화의 확산과 같은 새로운 사회문화적 변화로 산업 구조가 새롭게 개편되는 뉴노멀 시대가 도래했다. 뉴노멀 시대에도 어김없이 빛과 그림자가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언급했듯이 어떤 구체적 미래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의 기술이 2050년에는 쓸모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기술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직업이 쓸모없어진다는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많은 평범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몸을 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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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황, 전쟁, 코로나19, 4차 산업혁명.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위기 상황이다. 이 상황은 개인한테만 주어진 게 아니다. 인류 전체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적어도 수많은 사람이 함께 지혜를 모아 헤쳐 나가야 할 공통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 차원에서 살아남기를 해야 하는 처절한 상황이 있다. 부모의 학대에서 도망쳐 살아나온 아이, 좁은 트렁크 안에 갇혀 죽어간 어린아이, '갑질'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구타를 피해 옥상에서 떨어진 학생, 학대 받은 상황을 얘기해도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은 사회에 죽음으로 경종을 울린 운동선수, 사회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돌연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 이들은 살아남기를 왜 포기했을까? 극단적 선택의 이면에는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은 살아남겠다는 인간의 어두운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다. 학습만화에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 위험을 극복하고 살아남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 생각에 급급해서 주변 사람들의 위험을 못 본 체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자에게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 우리는 지금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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