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에 무너진 신한울 3·4호기 건설…"지역경제 파탄"
탈원전 정책 직격탄, 경북 울진·영덕 가보니
인구 줄고 서민경제 악화…코로나에 삼중고
원전산업은 위축…신재생에너지는 성과 못내
외국산 설비에 밀려 국내 업체는 적자 시달려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문채석 기자] 지난 15일 방문한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한울 3, 4호기 건설 예정 원전 부지에서 약 15㎞ 떨어진 번화가 '중앙로'는 활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오후 2시부터 한 시간 동안 거리를 오가는 행인은 20여명에 불과했다. 원전 건설이 중단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서민 경제는 꽁꽁 얼어붙었다. 양복점을 운영하는 남모(65)씨는 "탈원전 선언 이후 울진 인구가 줄면서 가게 매출이 25% 감소했다"며 "보상이나 해줄지 의문이지만 짓던 원전이나 마저 지었으면 좋겠다"고 한숨 지었다.
천지 1, 2호기가 들어오기로 했었던 경북 영덕군도 마찬가지다. 영덕역에서 10여㎞ 떨어진 예정 부지엔 펜션만 덩그러니 있었다. 펜션 주인은 "탈원전 정책 탓에 피해가 막심하다"며 "실낱 같은 원전 착공 재개 가능성만 바라보면서 영업을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대출금을 갚아가며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에너지전환 선언 3년 만에 원자력산업은 덩치가 작아진 것은 물론 속도 곪고 있다. 급속하게 탈원전에 나서다 보니 탈이 난 것이다. 지역경제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반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자리를 못 잡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에너지 산업 경쟁력과 일자리를 모두 지키지 못한 꼴이다. 전문가들은 신한울 3, 4호기만이라도 계획대로 추진하는 등 탈원전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원전 산업은 총체적 난국… 지역경제도 신음= 원자력산업협회는 매출액 100억원 이상 원전 업체를 '발전사업체(한국전력ㆍ한국수력원자력)' '공급산업체(한전KDN 등 한전 자회사와 두산중공업 등)' '연구ㆍ공공기관(한국원자력연구원 등)'으로 구분해 발표한다.
2017년에 발전사업체 매출은 18조1948억원이었는데 2018년 15조1529억원으로 16.7% 줄었다. 같은 기간 공급산업체 매출은 4조7140억원에서 4조4941억원으로 4.7% 감소했다. 원전사업체들은 전기요금 인상, 원전 산업 활성화 같은 성장 동력이 부족해 앞으로도 펀더멘털이 좋아질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급산업체는 그야말로 탈원전 직격탄을 맞았다. 두산중공업은 신한울 3ㆍ4호기 공사 보류의 희생양으로 자주 언급되는데, 매출이 2012년 7조9000억원에서 2019년 3조7000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원전 건설이 보류된 지역 경제는 신음하고 있다. 경북 울진은 설비용량 총 5600㎿ 규모의 신한울 1~4호기 완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재정자립도, 고용 지표 등이 악화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울진군의 고용률은 탈원전 이전인 2015년 상반기~2017년 상반기에 평균 62.54%였는데, 탈원전 이후인 2017년 하반기~2019년 하반기에 61.74%로 낮아졌다.
재정자립도는 '탈원전 원년'인 2017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6년 10.2%, 2017년 11.4%, 2018년 11.9%, 2019년 9.8%였다. 토지거래 면적은 2015년 1105만5000㎡, 2016년 1151만3000㎡에서 2017년 1087만6000㎡, 2018년 984만6000㎡, 2019년 923만6000㎡로 줄었다. 도시의 기초 체력인 인구증가율은 2014년 0.21%, 2015년 0.15%로 증가했다가 2016년 -0.03%, 2017년 -0.24%, 2018년 -0.41%를 기록했다. 탈원전 이후인 2017년과 2018년에 낙폭이 커진 것이다.
◆빈자리 못 채우는 신재생에너지= 정부가 원전 대신 제시한 신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 기업들의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급격하게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다 보니 빈자리를 외산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최대 태양광 업체인 OCI는 올해 1분기 영업손실 929억원을 기록하면서 작년보다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2월 OCI는 중국 기업의 가격 공세에 못이겨 국내에서 더 이상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내 유일의 잉곳ㆍ웨이퍼 생산업체인 웅진에너지의 경우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 기업회생절차 수순을 밟게 됐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설치된 풍력 발전기 총 690기 가운데 덴마크의 베스타스(Vestas) 발전기가 226기로 가장 많았다.
국내 신ㆍ재생에너지 수급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정부가 목표로 한 '2030년까지 20%'를 달성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한국풍력산업협회가 발간한 '2019 한국 풍력산업 애뉴얼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총 발전량 52만9341GWh 가운데 신재생에너지는 2만6606GWh로 전체 발전량의 5%에 불과했다. 이 중 최근 정부가 박차를 가하고 있는 풍력에너지의 경우 발전량이 2672GWh로 전체 전력 발전량의 0.5%밖에 미치지 못했다.
◆전문가들 "속도 조절 나서야"=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 착공을 둘러싼 절차적 정당성을 떠나 신한울 3ㆍ4호기만이라도 지어야 한다"며 "신한울 3ㆍ4호기 착공은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명분과 상충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고용 증대와 탄소 저감 등을 통해 정부의 '친환경' 명분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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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사업자 보조금을 늘려 발전설비를 확충하는 데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에 먼저 지원을 해 '기업 경쟁력 강화→단가 하락→사업자 투자심리 확대'를 이끌어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버틸 여력을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북 울진·영덕=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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