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한달…'지옥철 탈출' 기쁨도 잠시, '눈칫밥 두배' 워라밸 깨졌다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출근길 지옥이 사라졌지만 루틴도 망가졌다."
IT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과장급 김영호(가명)씨는 재택근무 3주 차인 지난주부터 아예 복장을 갖추고 사원증을 목에 건 채 '자녀의 방'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재택근무로 수면 시간이 늘어 좋던 것도 단 일주일. 상사에게서 걸려온 업무 전화를 받던 중 어린 자녀가 울음을 터뜨려 당황했다는 그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눈칫밥을 먹고 있다"며 "일과 생활의 분리가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재택근무 한 달을 맞이한 직장인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부랴부랴 도입된 재택근무가 업무 혁신을 준비하는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 이면에는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꿈틀댄다. 업무 공백이 가시화하자 기업들도 출근 정상화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재택근무 효율적" 도입 호평= 25일로 한 달째 재택근무 중인 SK그룹 계열사의 실무급 이지은(가명)씨는 "의외로 재택근무의 시스템이 효율적이라 내심 놀랐다"며 "1시간씩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니 업무 처리량이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CJ그룹 계열사의 팀장급 박진호(가명)씨 역시 "지옥철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좋다"며 "이번 기회로 재택근무 시스템을 정비하고 확대해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지난 한 달을 평가했다.
ICT기업을 중심으로 자체 설문조사에서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SK텔레콤이 재택근무 한 달을 맞아 설문조사를 한 결과 '평소와 유사하거나 더 효율적'이라는 답변이 63.7%였다. '다소 불편하지만 감내할 수 있는 수준(34.0%)'까지 포함하면 무려 97% 이상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설문조사에서도 5점 만점에 4.15점으로 대다수가 만족감을 표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도입한 재택근무가 업무 혁신 실험의 측면에서는 성공적으로 첫발을 뗀 셈이다.
◆장기화 우려… 고충도 잇따라= 하지만 재택근무가 한 달 이상 길어지며 업무 공백과 고충을 토로하는 이도 늘고 있다. 대기업 중간관리자 이정호씨는 "아무리 시스템이 좋아져도 업무상 커뮤니케이션에 한계가 있다"며 "모니터 너머로 뉘앙스 차이까지 전달하는 게 쉽지 않다. 협업도 한 박자씩 늦어진다"고 고개를 저었다.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김영석씨는 "'재택=논다'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문제"도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일과 생활의 분리가 쉽지 않다는 고충도 쏟아진다. 30대 워킹맘 김진영씨는 "퇴근 시간 이후까지 근무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교대근무제로 일하는 박영국씨는 "재택근무와 정상 근무가 반복되다 보니 루틴이 망가졌다"고 호소했다. 근무 시간만큼은 분리돼 있던 가족들이 다 함께 집에 묶이면서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진다. 업무 전화 중 자녀의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말로만 듣던 삼식이(하루 세 끼를 집에서 먹는 남편을 빗댄 말)가 됐다는 하소연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일부 업계의 경우 불안감은 더 크다. 여행업계 종사자인 김정미씨는 "월급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데 회사 분위기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장기화 시 기업들의 연봉 삭감, 구조조정이 줄 이을 것이란 우려도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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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 관계자는 "출근 정상화 시점을 고민 중이지만 아직까진 재택근무 중단 결정에 대한 부담이 있다"며 "4월 개학 시기까지는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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