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秀,PACE] 풍월당 - 의사 가운과 맞바꾼 ‘정신이 우아한’ 안식처
“디지털은 잊기 위한 것이고 아날로그는 기억하기 위한 것”
음반 시장 쇠락기에 클래식 음반매장으로 출발, 지금은 출판·아카데미 등 종합 공간으로 발돋움
클래식을 사랑한 정신과 의사, 연 2억 적자에도 사명감으로 운영
압구정에 자리잡은 풍월당은 음반 시장이 쇠락하던 2003년 클래식 음반매장으로 문을 연 뒤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의 대표 사랑방이자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먼저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 했다.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음반 시장이 쇠락하고 있던 2003년 여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클래식 음반매장이 문을 열었다. mp3의 등장으로 음악은 음반보다 음원으로 소비되고, 그중에서도 클래식은 소외된 장르로 인식될 때였다. 이러다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던 시기에 오직 클래식 음반에만 집중한 공간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탄생했다. 정신과 의사 박종호 대표는 파일로 흩뿌려지던 클래식의 실재(實在)를 음반으로 붙잡고 대중 앞에 거상해냈다.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방이자,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먼저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한 풍월당의 연원은 걷는 길이 곧 지도가 된 감식가의 노정에서 출발했다.
“젊은이는 결국 무관심하게 변하지만 우주의 법칙은 어떤 경우에도 무관심하지 않고 예민한 사람의 편이다.” '월든'으로 사랑받는 미국 자연주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지적만큼 예민한 감식안으로 17년째 클래식 음악만을 다뤄온 풍월당은 애호가의 발걸음을 사로잡은 공간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국내 정신과 개원의 중 상위 납세자로 손꼽히던 박 대표가 의사 가운을 벗고 클래식 음반매장을 열게 된 배경에는 음반 시장의 위기와 함께 클래식에 매료된 그의 삶 자체가 녹아있다.
클래식 음반을 판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의가 필요하게 됐고, 강의를 진행하다 보니 또 자연히 출판이 필요하게 됐다는 풍월당의 행보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곧 지도가 되고 있다. 사진 = 김현우 PD
원본보기 아이콘깐깐한 ‘감식가’에서 까칠한 ‘길잡이’로…직접 강의 이끄는 박종호 대표
1년에 6~7회 정도 외국에 나가 공연을 챙겨본다는 그는 공연 보는데 쏟은 비용만 ‘빌딩 한 채 값’이 될 만큼 여전히 음악을 사랑한다. 3년 전 착수한 출판사업도 ‘제대로 된 오페라 대본집’이 없어 직접 제작에 나서느라 시작했단다. 과거 “대중음악은 주간지고, 고전음악은 톨스토이다. 일반 대중은 고급화되기 어렵고, 클래식 음악은 소수 엘리트의 선택받은 문화다.”고 했던 독설에 책무라도 지듯 지금은 진료 대신 강의와 공부로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희사하고 있다.
클래식 음반매장으로 알려졌지만, 아카데미 운영과 클래식 서적 출판, 여기에 아티스트 쇼케이스까지 꾸준히 진행되는 이 공간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클래식 음악에 관한 모든 일을 하는 곳이죠.” 풍월당 창립멤버인 최성은 실장의 간명한 답이 돌아왔다.
“대한민국에 이런 공간이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는 박 대표님 생각에 뜻을 같이했지요. 우리가 정신적으로 우아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잖아요. 음악을 통해 안정을 찾고 편안해질 수 있는 장소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차분한 표정 너머로 어떤 사명감이 감지됐다. 최 실장은 대학 졸업 후 부산 국도레코드에서 음반 매장 점원으로 근무하다 단골손님이었던 박종호 대표의 제안으로 풍월당 창립멤버로 합류했다. 음반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자연히 교육과 강의가 필요해졌고, 더 깊이 들어가 보니 책이 필요했다는 그는 “계획해서 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이뤄졌죠.”라며 천연히 미소 짓는다.
음반 매장 옆에 자리한 카페 로젠 카발리에는 1900년대 빈의 카페문화를 재현한 공간이다. 카페에 모여 예술과 시대를 논했던 세기말 오스트리아의 예술가들처럼, 풍월당 역시 공들인 음악이 만든 세련된 사회를 꿈꾸는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 김현우 PD
원본보기 아이콘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시대정신과 예술을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
풍월당은 전공자는 많은데 감상자는 적은 풍토에서 초보자나 클래식에 목마른 이들을 무엇으로 채워줄 수 있을지를 놓고 고민한 끝에 교육을 위한 아카데미를 시작했다고 한다. “풍월당의 강의는 전공자를 위한 강의가 아니에요. 누구나 오셔서 음악을 듣고,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로 들어가 사람을 이야기하고, 배경을 마주하고, 문학과 미술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아무것도 모르셔도 돼요. 그냥 가슴 하나만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음반을 위해 시작한 강의였지만 지금은 강의가 음반보다 인기가 많다. 음반매장은 지금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박 대표가 진행하는 강의 수익이 이를 상쇄한다고 한다.
공간을 살펴보다 문득 음반 진열장 아래, 빈틈없이 채워진 사인들에 눈길이 간다. 풍월당에서 쇼케이스를 가진 아티스트들이 남긴 사인은 작은 공연장으로서의 풍월당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이 많은 아티스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굴까? 잠시 생각하던 최 실장이 답했다. “한 분 한 분 다 기억에 남지만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가장 인상적이었죠. 풍월당에 두 번 방문했는데, 그 인연으로 프랑스에서 출간한 에세이도 우리가 먼저 번역해서 출간했고, 또 타로의 앨범을 전 세계에서 제가 가장 많이 팔았을 걸요? (웃음) 그만큼 풍월당과는 각별한 아티스트입니다.”
공간이 갖는 역사와 힘 지켜내려 한 곳서 꾸준히 운영
대중이 몰라본 채 폐반된 앨범을 곡진히 살려내고, 연주자의 화려한 이력이나 명성 대신 청자를 감동시키는 좋은 연주를 기준 삼아 선택한 앨범은 곧 풍월당의 안목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여기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 보전된 공간은 아련한 추억마저 선사한다. 매장을 찾은 한 20대 남성은 “어렸을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처음 풍월당을 찾았을 때가 생각난다”며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모습이 감동, 그리고 믿음을 준다”고 회상했다. 이런 오랜 손님들의 역사가 켜켜이 쌓이자 풍월당은 이전 계획 등을 모두 접고 처음 문을 연 이 동네에서 여전히 월세를 내면서 운영하고 있다. 공간이 품은 개인의 역사까지 소중히 여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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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보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지만 풍월당은 그 흔한 온라인 매장조차 없다. 듣고 사라지는 음악이 아닌, 만지고 궁구하고 이야기하고 책을 읽는 음악을 만나려면 오프라인에서 음반을 사야지만 가능하다 믿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풍월당을 열기 전, 외국에 다녀올 때마다 국내에 구하기 어려운 음반을 대신 사다 주다가 문득 “천만 명이 사는 서울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왜 없을까”했던 고민이 풍월당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오늘도 클래식 음반이라는 기록 전승에 앞장서고 있는 풍월당은 공들인 음악을 찾는 사람들의 우아한 안식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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