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령 같은 파생상품 가려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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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최근 몇 년간 우리 자본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총수익스와프라는 유령이. 기업과 금융회사 모두 정체불명의 이 유령에 매혹되어 신성동맹을 맺고 자본시장의 성배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라임펀드 사태가 악화되면서 총수익스와프(TRSㆍTotal Return Swap)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임펀드에 국한될 수도 있었던 환매중단 현상이 헤지펀드 업계 전반에 걸쳐 확산되는 이유가 TRS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 이전에도 최근 수년간 금호ㆍ두산ㆍ롯데ㆍ코오롱ㆍ한진ㆍ현대ㆍ효성ㆍSKㆍ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 등 여러 재벌그룹의 계열사 및 국내외 헤지펀드가 이 TRS와 관련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TRS는 신용부도스와프(CDS)와 더불어 1990년대 이후 크게 발전한 대표적인 신용파생상품이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이 TRS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J.P.모건과 거래한 국내 여러 금융기관들에게 약 1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손실을 입힌 악몽의 주인공이다. 당시 거래의 기초자산은 채권이었는데, 최근 수년간 급속히 세를 넓히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 자본시장에서 큰 관심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TRS다.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TRS는 스와프 매수인(총수익 수취인. 주로 기업·헤지펀드)이 특정 주식(자사주 포함)을 스와프 매도인(총수익 지급인. 주로 금융회사)에게 양도하거나 스와프 매도인으로 하여금 매입하게 하고, 이 주식의 가치 변동과 배당 등으로 발생하는 자본손익(총수익 또는 총손실)은 스와프 매수인이 모두 가져가는 대신 주식 보관 역할을 맡는 스와프 매도인에게 고정적인 약정이자 내지 수수료를 지급하는 장외파생상품계약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식의 법적 소유자는 스와프 매도인인 금융회사이고 따라서 의결권도 금융회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이면계약이나 상관습을 통해 스와프 매수인인 기업이 이 주식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법적 규제를 회피하면서 아주 용이하게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를 '공의결권' 내지 '은닉의결권'이라 한다.


주식 TRS로 인해 발생했거나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을 몇 가지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은 자사주 관련 상법과 자본시장법 규제를 회피해 용이하게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자본시장법상 5% 보고의무를 회피할 수도 있다. 5% 보고의무가 발생하는 '사실상 소유분'에 TRS로 확보한 의결권은 명시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투자자는 공매도잔고 보고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 공매도잔고를 보고할 자는 TRS 약정에 따라 대신 공매도를 한 금융회사이지 실질적인 공매도자인 헤지펀드 등의 투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 헤지펀드가 스와프 매수인이 되면 100% 미만의 증거금을 맡기고 금융회사를 통해 100%의 주식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시스템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한 자본시장법상 레버리지 한도 규제가 무력화된다. 다섯째, 대주주가 주식양도차익 과세를 회피할 수 있다. 상장법인 지분을 일정 금액 이상 보유한 경우 대주주로 간주되어 양도소득세가 부과되는데 TRS를 이용하여 주식을 간접보유하고 있으면 조세회피가 가능하다. 이 외에 공정거래법 규제 회피도 작지 않은 문제다.


이러한 결과는 주식 TRS의 본질이 차명거래(차명보유)에 가까운데도 현행 관련법들이 이 새로운 금융수단을 포섭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주요국 사례를 보면 대부분 명확한 법규가 없는 상태에서 업계와 감독당국, 감독당국과 법원의 입장이 각각 달랐다. 유령 같은 파생상품으로 인해 시장이 불확실하고 혼란하여 규제위험이 매우 큰 상황인 것이다. 이에 따라 한편으로는 탈법행위 논란이 야기되고 한편으로는 파생상품의 정당한 발전 또한 저해되고 있다. 조속히 관련 법령을 개정해 이 유령의 실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용인하기 어려운 탈법적 차명거래 유형을 가려내 엄격히 규제하되, 그렇지 않은 정당한 파생상품은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법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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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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