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과 불평등의 250년 근대사를 기술한 '대탈출(2013)'의 저자 앵거스 디튼은 노벨상을 받은 2015년 동료이자 아내인 케이시와 함께 '21세기 높아지는 미국 비(非)히스패닉계 백인 중년의 질병률과 사망률'이라는 제목의 충격적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1999~2013년에 걸쳐 45~54세의 중년 사망률을 추정한 결과 미국 내 다른 인종이나 다른 선진국의 패턴과 정반대로 비히스패닉계 백인 중년의 사망률이 높아지는 추세를 발견했다. 당초 독일과 프랑스보다 낮았던 미국 백인의 사망률은 21세기에 들어서 역전된 후 2010년대부터 다른 선진국과 미국 내 다른 인종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높아진 백인 중년 사망률은 중등 교육 이하를 받은 남녀가 주도했으며 그 결과 고등교육을 받은 백인 사망률이 감소했음에도 전체 백인의 사망률은 상승했다. 높아진 사망률은 마약 및 알코올과 같은 약물 남용, 자살, 간질환에 그 배경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흑인과 히스패닉의 사망률은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999년부터 최소 40만명이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했으며 현재 2500개 이상 지방자치단체가 진통제를 과다 선전하고 지역사회에 퍼뜨린 혐의로 최소 6개 이상의 제약회사들을 제소했다.
저자들은 21세기에 들어와 급증하는 저학력 백인 중년의 사망률을 금융위기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제대로 된 직장을 얻을 수 없어 취업, 결혼, 자녀 출산, 건강 등에 불리한 여건이 오랜 기간 누적된 결과임을 데이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관련 연구자들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미국 노동시장에 미친 파급효과를 분석하고 있는 '중국 무역 충격' 연구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다. 북미 자유무역협정 출범 후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멕시코의 대미 수출액 비율이 두 배로 증가하는 데 12년이 걸렸다. 그러나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중국은 불과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중국 수입품이 미국으로 밀려 들어 왔던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쏟아진 중국 수입품과 경합했던 지역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저학력 노동자층의 심각한 고용 감소가 일어났으며 경쟁력을 잃어버린 제조업이 집중된 지역, 즉 러스트벨트에 장기적 파급 효과를 미쳤다. 고용, 실질 임금, 경제활동 참가율은 계속 떨어졌고 실업은 늘어났다.
특히 소득의 감소는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할 당시 임금이 낮을수록, 첫 직장에서 일한 기간이 짧을수록, 경제활동 인구에 편입된 기간이 짧을수록 더 크게 일어났다. 별다른 기술을 가지지 못했던 이들은 대부분 제조업 부문에서 맴돌았으며 중국 무역 충격에 반복적으로 시달렸다.
연구자들은 대선 당시 지역투표 결과와 무역 데이터를 이용해 만약 중국 수입품이 실제보다 50%가 낮은 가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했을 때 미시간주, 위스콘신주, 펜실베이니아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민주당 후보가 선출되었을 것이며 전체 선거인단에서도 과반수를 얻었을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 무역 충격이 2016년 미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 상당수가 트럼프가 좋아서가 아니라 기성 정치인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세간의 평은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대목이다.
21세기에 들어와 급격하게 진행된 중국 무역 충격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조정이 매우 더디게 진행된 결과 빈부격차와 같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 격변을 초래했다. 그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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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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