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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개혁의 무두질은 공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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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개혁의 무두질은 공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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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改革)'이라는 단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꽤나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일반적으로 가죽제품을 피혁(皮革)이라 칭한다. 하지만 피(皮)와 혁(革)은 엄연히 의미의 차이가 있다. 중국 후한시대의 학자였던 허신이 쓴 설문해자에서는 피를 단순히 짐승의 가죽을 벗긴 것이라 했고, 혁은 짐승의 가죽에서 털을 다듬어 없앤 것이라 해석했다.


유교 경전인 주례에서는 '추렴피(秋斂皮) 동렴혁(冬斂革)' 이란 말이 있는데 "가을에 생피를 거두고 겨울에 가죽을 거둔다"는 의미이다. 가을에 동물들을 잡아 생피를 만들어 오랜기간 특수한 공정을 거쳐 가죽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공정이 바로 무두질이다. 무두질은 동물의 생피를 물로 세척하고 털, 지방이나 살 조각 등 불필요한 성분을 제거해 가공하는 작업이다.

전 세계에서 무두질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모로코 페스의 메디나가죽시장이다. 모로코의 4대 도시의 하나인 페스는 가죽제품의 매매보다는 1000년이 넘도록 전통방식으로 내려오는 무두질 작업장으로 더 유명하다. 모로코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형형색색의 팔레트와 같은 무두질 작업장을 구경하기 위해 페스를 찾는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온 관광객들을 반겨 주는 건 코를 찌르는 악취들이다. 가죽을 부드럽게 하고 염색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비둘기 똥, 소의 오줌 등 동물의 배설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질 좋은 가죽을 얻기 위해서는 무두질 과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무두질 작업장은 악취와 오수를 동반한다. 이를 사회에 비유한다면 이전의 불합리한 구조에서 합리적인 구조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 개혁이 무두질이다. 이에 따르는 부작용들은 악취일 것이다.


하지만 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하나 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제도 개혁의 무두질을 하는 사람의 손은 깨끗해야 한다는 '클린 핸드 원칙(Clean Hands Doctrine)'이다. 즉 소송이나 청원을 들고 법정에 들어오는 사람은 청구 대상과 관련해 부당한 행위로부터 자유롭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 개혁은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가능하다. 아무리 선한 의지라 할지라도 그 무두질을 행하는 사람은 개혁될 제도와는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이는 법률 관계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법적 권리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신의 성실의 원칙'과 일맥상통한다.


최근 검찰 개혁에서 보여주는 정부의 태도와 그 개혁을 일임할 사람을 살펴보면 클린 핸드 원칙은커녕 과연 개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오히려 이로 인해 국민 갈등만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고 그 피로감은 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위의 국내 상황은 차치하고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적인 상황들 또한 녹록지 않다. 한일 역사 갈등, 미ㆍ중 무역분쟁, 북한 비핵화, 무역수지 악화 등 국내 문제에 매몰돼있기에는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아무리 강한 회사라도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곤경에 빠질 것"이라며 "기업의 외부 환경 변화를 내부조직에서 잘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역량이 지도자의 리더십"이라 칭했다.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 싼 외부 환경을 읽을 리더십과 내부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존속될지도 미지수다. 이제는 결자해지의 시간이 되었다고 본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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