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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괴테가 사랑한 연필 '파버카스텔', 258년 역사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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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業스토리]1761년 설립 9대째 '파버家' 가족경영
1년에 20억 자루 연필 생산…100개국에서 연매출 8900억원
1800년대부터 직원 위한 '보험·연금' 제도 도입…'사내 유치원' 개념도 최초

고흐와 괴테가 사랑한 연필 '파버카스텔', 258년 역사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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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이 연필은 이상적이라고 할 만큼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 목공용 연필보다 색감은 훨씬 좋아. 재봉사 소녀를 그릴 때 이 연필을 썼는데 정말 좋더라고. 삼나무로 만들어졌고, 짙은 녹색이 칠해져 있는 이 연필은 한 자루에 20센트밖에 안 해."


네덜란드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1880년대 자신의 친구인 화가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고흐가 말한 그 연필이 바로 '파버카스텔(Faber-Castell)'의 연필이다. 고흐뿐 아니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Goethe), 샤넬 수석 디자이너 출신 칼 라거펠트 (Karl Lagerfeld)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선택을 받은 연필 브랜드이기도 하다.

파버카스텔의 시작은 17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스타인 지역에서 옷장을 제조하던 카스파르 파버(Kaspar Faber) 공장에서 남는 시간을 활용해 연필을 제조해 판매한 것이 파버카스텔의 시작이다. 그러다 1839년 창업자의 사망으로 그의 아들 안톤 빌헬름 파버가 회사를 물려받아 현재 파버카스텔의 본사가 위치한 뉘른베르크에 정착했다.


작은 공장에서 시작된 연필 사업은 현재 한 해에 20억 자루를 생산하는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14개국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으며, 해외지사를 운영하는 나라만 23개국으로 공식적으로 100개국 이상에 파버카스텔 연필이 팔려나간다. 연간 매출은 6억6000만 유로(약 8900억원, 2017년 기준)로 디지털 시대에도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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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버家의 놓지않는 '혁신'의 끈

지난해 파버카스텔의 9대 회장으로 찰스 그라폰 파버카스텔이 추대됐다. 1761년부터 지금까지 약 258년 동안 '파버 가문'이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세계 최장수 기업이자,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한 기업을 한 가문이 이끈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연필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시킨 파버카스텔의 4대 회장 로타르 폰 파버는 "창립자는 카스파르 파버이지만, 지금의 파버카스텔을 만든 건 로타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18단계의 경도 체제를 만든 최초의 인물로 B(Black, 짙기)와 H(Hard, 강도)로 연필심을 세분화했다. 또 'A.W.Faber'라는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해 최초로 '필기류의 브랜드화'를 이뤄냈고, 1843년 미국에 진출해 1849년에 뉴욕에 첫 번째 해외 지사를 설립했다. 고흐가 극찬한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흑연심'을 만들기 위해 시베리아의 흑연 광산에서 원자재를 개발하기도 했다.

1898년에 파버 가문의 오틸리에 폰 파버(로타르의 손녀)와 독일의 귀족가문 출신 알렉산더 카스텔 뤼덴하우젠(Alexander Castell-Rudenhausen)이 혼인하면서 이때부터 두 가문의 이름을 따 회사 이름을 '파버카스텔(Faber-Castell)'로 바꿨다. 파버 가문의 사위였던 알렉산더는 파버카스텔의 6대 회장이기도 한데, 1905년 지금까지도 파버카스텔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카스텔9000'을 내놨다. 당시 모든 연필은 원형으로 만들어졌으나 굴러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 세계 최초로 '육각형 연필' 디자인을 고안하기도 했다.


7대 회장인 롤란드 폰 파버 카스텔은 로타르 폰 파버의 형제인 요한 폰 파버가 설립한 요한 파버 연필 공장과 브라질에 있는 라피스 요한 파버를 인수해 기업 확장에 기여했다. 1960년 프랑스 진출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 페루 등에 공장을 설립했다.

안톤 볼프강 파버 카스텔

안톤 볼프강 파버 카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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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류계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8대 회장 안톤 볼프강 파버 카스텔은 친환경을 모토로 삼았다. 매년 15만 톤 이상의 목재를 사용하는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30년 이상 운영 중인 파버카스텔의 숲이 대표적이다. 브라질 남동부에 조성한 100㎢ 규모의 소나무 숲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켜 유엔(UN)으로부터 UNFCC(유엔기후변화협약) 인증서를 받기도 했다. 프리미엄 제품 라인 '그라프 폰 파버카스텔' 만년필도 그의 작품이다.


이렇듯 파버카스텔을 이끌어 온 파버 가문의 수장들은 모두 '자격이 충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등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이지만 혁신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9대째 내려오는 '사람 중심 경영'

안톤 볼프강 파버 카스텔 회장은 "훌륭한 가족 기업이란 사회적 책임과 환경적 책임, 관용, 겸손, 정직과 같은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경영철학은 그의 증조할아버지이자 4대 회장이었던 로타르 폰 파버 때부터 시작됐다.


로타르는 역사상 가장 깨어있는 기업가로 평가된다. 1844년 독일 최초로 노동자 건강보험을 시행했다. 세계 최초 공공복지제도인 '질병보험'이 도입된 건 39년 후의 일이다. 1849년에는 직원들을 위한 저축은행과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그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위한 사택을 마련한 것은 물론 '기업 사내 유치원'을 설립한 것도 파버카스텔이 독일 최초로 이뤄낸 일이다.

파버카스텔의 최초 사내유치원

파버카스텔의 최초 사내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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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버카스텔이 노동시간과 적정임금,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노동자 보호, 아동과 여성에 대한 보호 같은 기본 조약이 적힌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체결한 건 2000년이지만, 사실 160년 전부터 이런 조약들을 준수해 온 기업인 셈이다.


최근에는 트렌드에 발맞춘 직원 복지에 가장 큰 신경을 쓰고 있다. 지치지 않고 건강한 심신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파버카스텔의 최근 과제다. 현재 파버카스텔은 독일 본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직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정신과 상담의와 상담을 하도록 운영 중이며, 퇴근 후 운동 등 건강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적극 권장하며 지원하고 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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