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날엔…] ‘추경 107일’의 비밀…의원 꿔주기, 영수회담 그리고 노벨상
김대중 정부 때 한나라당 장외투쟁 장기화…청와대 회동이 분수령, 노벨평화상 정국 반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처리를 둘러싼 정치권 신경전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올해도 역대급 ‘지연 처리’ 논란을 빚었지만 2000년을 상황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2000년 6월29일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이 통과된 시기는 10월13일이다. 107일 만에 통과된 2000년 추경은 역대 최고기록이다.
2000년 제16대 국회가 불명예 기록을 세운 것은 복합적인 요인이 겹쳐 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DJP(김대중, 김종필, 박태준) 연합’으로 탄생한 정부다. 새천년민주당은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연합 정부를 이뤘다.
자민련은 2000년 총선에서 지역구 12석, 비례대표 5석 등 17석을 얻는데 그쳤다. 20석 이상인 원내 교섭단체 구성 요건에 미달한 셈이다. 민주당은 자민련의 교섭단체 지위 유지를 위해 교섭단체 요건을 20석에서 10석으로 낮추는 국회법 개정을 추진했다.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은 국회법 개정에 거세게 반발하며 장외투쟁을 선택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정부 여당의 추경 처리 요구를 외면한 채 국회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이 국회 운영에 협조를 하지 않으면서 민주당의 고민은 깊어졌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의원 꿔주기’라는 카드를 해법으로 마련했다. 민주당 의원 일부가 자민련 쪽으로 당적을 옮기는 방식으로 교섭단체 요건인 원내 20석을 채워주는 해법이다. 야당과 언론의 비판을 자초한 선택이었다.
추경안 처리는 무한정 미뤄졌다. 한 달, 두 달, 세 달을 넘겨 100일이 되도록 추경 처리는 기약이 없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정국의 해법으로 꺼낸 카드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이었다.
2000년 10월9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의 영수회담이 진행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나라당 국회 복귀의 명분을 제공했다. 영수회담을 2개월에 한 번씩 정례화 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여야 정책협의회를 재가동하기로 했다. 남북관계특별위원회를 국회에 설치해 나가기로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의 영수회담이 진행된 이후 국회 파행은 해소됐다. 10월13일 추경 통과도 그 때문이다. 국회는 이날 새벽 본회의를 열고 정부 원안 2조4000억원에서 1275억원이 삭감된 2조2725억원의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6월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원본보기 아이콘우여곡절 끝에 추경안이 통과됐지만 여야 관계의 훈풍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추경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 직후 한나라당 의원 20여명은 검찰 선거사범 기소가 편파적이라고 주장하며 밤샘 농성을 벌였다.
국회의 어수선한 상황을 단숨에 바꿔놓을 소식이 노르웨이에서 전해졌다. 107일 만에 추경을 처리했던 2000년 10월13일, 한국시각 오후 6시 노르웨이 노벨연구소에서는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명단을 공개했다.
노벨연구소는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면서 “김 대통령이 취임 이후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한간에 50년 이상 계속된 전쟁과 적대감을 해소하려 노력해왔다”고 평가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정국의 다른 이슈를 모두 빨아들이는 이슈 블랙홀이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를 향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나라당도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서는 축하의 뜻을 전했다.
이회창 총재는 비서실장을 통해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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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더불어 진심으로 축하하며,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남북평화와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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