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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마지막 열정마저 사랑에 바친 전설의 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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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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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세고 갈라진 반역의 목소리...칼라스 노래의 절망 속 진실

오나시스와 결별 달라진 인생...음악·사랑 모든 걸 던졌던 삶

세상의 사랑 받는 프리마돈나...그 뒤에 숨은 비극의 그림자들


영화 '필라델피아'의 백미는 죽음을 앞둔 앤드류 배킷(톰 행크스)의 독백이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가 흘러나온다. "주위가 온통 피에 물들고 진흙투성이라 하더라도 난 신성해요. 그래서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주죠."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다. 배킷은 지그시 눈을 감고 가사를 읊어댄다. 노래가 절정에 달하자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절망의 심연에서 분출해 허공에 울려 퍼진다. 죽음을 앞둔 이의 마지막 남은 숭고한 열정이다.

칼라스의 노래는 억세다. 성역을 이동할 때면 종종 소리가 갈라진다. 그래서 '반역의 목소리'라고 일컬어졌다. 비브라토가 섞인 소음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전 세계의 심금을 울린다.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 연기의 힘이다. 어떤 표정이나 몸짓보다도 사실적으로 나타난다.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은 "가수의 목소리는 특정 상황에 정확히 부합할 때 아름답다. 칼라스의 목소리가 그렇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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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에도 인생이 반영된다. 칼라스에게는 사랑이다. 노래마저 제쳐두고 오나시스를 원했다. 바람대로 아이를 가졌을 때 믿었던 연인은 그녀를 버렸다.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했다. 칼라스는 파리의 한 식당에서 환하게 웃었다. 고통을 끝까지 묻어둘 수는 없었다. 조산한 아이마저 사망해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그렇게 세계적인 디바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녀는 가수로서도 행복과 불행의 쌍곡선이 자주 교차했다. 징조가 좋은 날에 악재가 따라다녔다. 특히 1958년 1월2일 로마 오페라극장은 칼라스를 고약한 여자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대통령 부처가 참석한 신년 축하 무대다. 사교클럽에서 당일 새벽까지 파티를 즐기다가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결국 '노르마'의 1막만 부르고 극장을 떠났다. "대통령이 참석하셨으니 그냥 성의 표시로 대사만 읊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가뜩이나 표독스런 성격 탓에 미움을 받았던 그녀는 온갖 비난에 휩싸였다. 국회로부터 국가원수를 모독했다는 질타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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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스는 무대를 포기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영화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에서 편지 낭독을 통해 공개된다. "공연 전단 위에 새겨진 그 이름, 빈첸초 벨리니요. 제 원칙상 도저히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없었습니다. 노래가 아닌 소음으로 만들 수 없었죠." 벨리니는 노르마의 작곡가다. 칼라스에게는 영감을 전한 스승과 같다. 그가 작곡한 '청교도'를 우연히 부르면서 전통 벨 칸토 오페라의 길에 들어섰다. 벨리니는 물론 주세페 베르디, 가에타노 도니제티, 조아키노 로시니 등이 작곡한 노래의 진가를 세상에 알렸다.


유형종 공연해설가는 저서 '불멸의 목소리'에서 칼라스에 대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었다"면서도 "노르마, '돈 카를로', '토스카' 등 프리마돈나의 내면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격렬한 감정을 그대로 뽑아 올리는 그녀만의 음악적 경기를 깨닫게 되면 누구나 그녀의 포로가 된다"고 썼다.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여주인공이 예쁜 목소리만으로 노래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극적인 진실일 것이고, 칼라스의 특징인 고음의 생소리나 심한 비브라토도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 사실적 감동을 더하는 거다"라고 했다. 이전에도 위대한 가수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준 드라마의 감동이나 카리스마는 칼라스에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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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다. 레나타 테발디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리리코 스핀토 전통을 충실하게 이어받아 '발성의 교과서'로 불렸다. 소리를 통제하면서 적절한 악센트를 붙이는 올바른 뉘앙스가 일품으로 꼽혔다. 칼라스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막 브라질 무대에 데뷔한 칼라스의 토스카 무대를 빼앗으면서 갈등이 깊어졌다. 테발디는 "상파울루에서 점찍어둔 고가의 보석을 사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고, 칼라스는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샴페인이라면 테발디는 코카콜라"라고 비난했다. 테발디는 "코카콜라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겐 심장이 있다"고 맞받아쳤다.


두 사람은 196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화해했다. 테발디가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공연을 마친 날, 칼라스가 분장실을 찾아갔다. 그녀는 "성공적인 무대를 축하한다. 당신의 경력이 끝날 때까지 무대에서나 인생에서나 많은 결실이 있기를 빌겠다"고 했다. 당시 칼라스는 오나시스와 결별한 충격으로 인생의 행복을 잃은 상태였다. 목소리마저 손상돼 은퇴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테발디는 그런 그녀가 내심 부러웠을 거다. 내성적인 성격을 이겨내고 베리즈모(인물과 무대에서 진실주의를 중시하는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 등에 도전했으나 조금 더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비극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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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스는 삶 자체에 비극적인 그림자가 드리웠다. 결과적으로 음악도 사랑도 모두 잃었다. "즐거운 새만 노래하는 법이에요. 사랑을 잃은 새는 그냥 둥지에 숨어서 죽어버리죠." 그녀는 후자였다. 재기는커녕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수면제에 의존해 잠을 청했다. 그 삶은 길지 않았다. 오나시스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칼라스는 여전히 오나시스를 사랑하고 있을까?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는 영화가 끝날 즈음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를 들려준다. 죽음을 앞둔 또 다른 이의 숭고한 열정을 제시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 노래할 필요가 없을 줄 알았죠. 여자로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남자를 행복하게 하는 거니까요. 오나시스 말대로 하면 진정성과 진심은 정말 비싼 값을 내야 얻을 수 있다더군요. 저는 낼 거예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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