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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이장 출신 '리틀 노무현', 다시 그날이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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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사 세 번째 도전 끝에 당선…대선 앞두고 지사직 사퇴, '기대→실망' 정치 변곡점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정치, 그날엔…] 이장 출신 '리틀 노무현', 다시 그날이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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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 치기이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 도전에 나선 정치인 김두관의 도전에 대한 정가의 반응이었다.

2010년 이전의 한국 정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경상남도는 보수정당의 아성이었다.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 역사를 살펴보면 제1대 경남지사 민주자유당(김혁규), 제2대 경남지사 한나라당(김혁규), 제3대 경남지사 한나라당(김혁규), 제4대 경남지사 한나라당(김태호)으로 이어졌다.


김혁규 당시 경남도지사는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74.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김태호 후보도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63.1%의 득표율로 경남지사에 올랐다.


경남도지사 선거 도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정치인 김두관이 누구보다 잘 안다. 김혁규 경남지사가 74.5% 득표율을 올렸을 때 새천년민주당의 상대 후보는 바로 김두관이었다. 그는 16.88%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낙선했다.

2006년 경남도지사 선거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섰던 정치인 김두관은 25.41% 득표율로 다시 한 번 경남도지사의 꿈이 좌절됐다. 자신의 고향인 남해군에서 58.9%의 득표율을 올렸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경남의 주요 대도시를 비롯한 다른 지역 모두는 큰 격차로 패배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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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경남도지사 도전에서 쓴맛을 맛보았던 정치인 김두관은 2010년 정치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6월2일 지방선거에서 제5대 민선 경남도지사의 자리에 오르고자 무소속 후보로 나섰다.


민주당 간판으로 나서는 것보다는 무소속 후보가 낫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경남의 벽’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정치인 김두관은 두 번의 경남도지사 도전의 경함이 있기 때문에 인지도 측면에서는 해볼 만한 승부였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 정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이달곤 후보가 나섰다. 정치색이 덜한 학계 출신 인사를 당시 여당의 경남도지사 후보로 내세운 셈이다. 국회의원 신분이기는 했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학계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정치인 김두관은 이른바 스토리가 있는 인물이다. 남해군 이장 출신 정치인이 경남도지사에 당선될 것인지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정치인 김두관은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다. 지역주의 벽에 맞서 끊임없이 도전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2010년 경남도지사 선거는 과거와는 구도의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전국적으로 야권 연대가 이뤄지면서 한나라당 후보 대 야권 단일후보의 맞대결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경남에서는 김두관 무소속 후보를 민주당이 사실상 지원하는 형태로 선거가 치러졌다.


김두관 후보의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사상 처음으로 민선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보수 계열 정당이 패배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경남의 선거 이변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2010년 6월2일 출구조사는 그 예측에 힘을 실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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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 후보 51.5%, 이달곤 후보 48.5%로 나타났다. 경합지역으로 분류됐지만 김두관 후보가 앞선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셈이다. 개표는 긴장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경남 도지사가 가려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선거 다음날인 2010년 6월3일 아침이 돼서야 결과가 나왔다. 주요 방송의 ‘당선 속보’ 자막에는 김두관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최종 득표율은 김두관 후보 53.50%, 이달곤 후보 46.49%로 집계됐다. 남해군 이장은 드디어 경남도지사의 꿈을 이룬 셈이다.


김두관 후보는 창원, 진주, 김해, 거제, 양산 등의 대도시 쪽에서 많은 표를 얻었다. 자신의 고향인 남해군에서는 66.29%의 득표율을 올리며 경쟁 후보를 압도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은 6월3일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정국을 술렁이게 했던 핵심 원인 중 하나는 경남도지사 선거였다.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는 6월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김두관 당선자는 당시 “대통령께서 지역주의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8번이나 나무를 찍었는데 내가 마지막 1~2번 도끼질을 해서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나무를 쓰러뜨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김두관의 정치인생은 탄탄대로가 열릴 것처럼 보였다. 2012년 대선의 다크호스가 될 것이란 관측도 이어졌다. 2012년 대선 도전을 위해서는 경남도지사 자리를 내려놓아야 하다는 게 고민이었다. 2012년 7월6일 그는 경남도지사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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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결단에 따라 경남도지사를 내려놓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민심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이라는 평가도 만만치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그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경남도지사 자리만 내놓는 상황이 됐다.


정치인 김두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2012년 7월6일 자신의 선택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당시 그의 판단은 정치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그는 제2의 정치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정치인 김두관은 김포시갑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이다. 2014년 재보궐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했지만 2016년 제20대 총선에 다시 도전해 국회의원이 됐다. 당시 김두관 후보는 59.30%의 득표율로 40.69%를 얻은 새누리당 후보를 압도했다.


경남에서 경기도 김포로 근거지가 바뀌었지만 그의 정치인생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다시 ‘큰 꿈’에 대한 도전의 기회를 얻을까. 결과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정치적인 위상은 과거와 다르다는 점이다. 정치영역에 ‘만약’은 없다지만 2012년 7월로 되돌아간다면, 그때 사퇴가 아닌 경남도지사직 유지를 결정했다면 한국 정치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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