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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캡틴 마블' 페미니즘 논쟁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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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캡틴 마블' 페미니즘 논쟁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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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스튜디오의 영화 '캡틴 마블'은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주인공 캐럴 댄버스를 연기한 브리 라슨의 발언이 평점 테러를 넘어 불매 운동을 야기했다. "캡틴 마블은 위대한 페미니즘 영화로 기획됐다." 섭외한 배우들의 면면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라슨의 대표작은 2016년 개봉한 '룸.' 그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녀는 한 남자에게 납치돼 작은 방에 갇히는 조이를 연기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다가 아들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을 낳고 엄마가 되는 배역이다. 감옥이나 다름없는 방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다가 탈출을 결심한다. 캡틴 마블에서 댄버스를 속박하는 스승 월터 로슨은 주드 로가 맡았다. '나를 책임져, 알피(2004년)', '클로저(2004년)' 등에서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남성을 그렸다.


캡틴 마블은 라슨의 예고와 달리 페미니즘의 색채가 옅게 나타난다. 어린 나이에 공군에 들어가서 차별을 받는 모습 등을 플래시백으로 처리했다. 그래서 "여자는 조종사가 될 수 없다"와 같은 대사가 스치듯 지나간다. 그때마다 댄버스의 눈이 독기를 뿜으며 날카롭게 번득이지만, 직접적 표현을 회피한 듯한 인상을 준다. 댄버스가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과정에 곁다리로 실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연출은 민감한 내용을 이야기의 부수적 요소로 자리하게 해 관객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설득을 이끌어낼 수 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년)' 속 레이(데이지 리들리)의 서사가 그랬다. 그녀 또한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훈련을 통해 끊임없이 각성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광선검은 그 완성을 가리키는 상징물이다. 내면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처절한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힘과 같다. 캡틴 마블에서는 초인적인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자주적인 성격으로 함축된다. 그런데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달리 스스로 통제와 억압을 허무는 과정이 단출하게 그려진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고, 로슨 앞에서 고작 목에 붙은 패치를 떼어내면서 깨달음에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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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은 DC코믹스에서 제작한 '원더우먼(2017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마존 데미스키라왕국의 공주인 다이애나 프린스(갤 가돗)는 훈련을 받다가 최강 전사로서의 운명을 직감한다. 그녀는 트레버 대위(크리스 파인)를 따라 인간 세상으로 나오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실상을 확인한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깨닫고, 통제해온 숨은 능력을 발휘한다. 이미 초인적인 힘을 지닌 히어로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면서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캡틴 마블과 많이 닮았다. 하지만 원더우먼은 오래 전부터 '성적 대상화'라는 이유로 많은 지적을 받아왔다. 여권 신장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남성의 성적 욕망과 미국의 패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이 때문에 DC코믹스는 새롭게 영화를 만들면서 외모나 성격에 적잖은 변화를 줬다. 물론 아마존 여전사로서의 기개보다 트레버의 이상과 사상에 끌려가는 전개는 그대로 재현할 수밖에 없었다.


캡틴 마블은 이를 의식해서인지 후반부에 강렬한 대사를 배치했다. 초능력 없이 싸우자는 로슨의 제안에 댄버스가 "내가 왜 너에게 나를 증명해야 하지?"라고 되묻는다. 약 30만년 동안 이어져온 불평등에 대한 각성이자 남성 중심의 사회질서를 반대하는 목소리라고 할만하다. 누구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강인한 여성 영웅을 가리키므로. 하지만 그 힘이 우연한 계기를 통해 주어졌으며 별다른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성의 입장을 고스란히 대변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앞선 장면들에 비슷한 뉘앙스의 대사들을 듬성듬성 배치하기도 해 어설프게 페미니즘을 주창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적으로도 팽팽했던 대립이 허무하게 끝나버려서 김이 새어버린다. 전형적인 마블 영화의 공식을 따르면서 생긴 한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초인적인 힘을 가진다는 내용만으로 여성의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대변할 수 있다는 맹신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 남성 히어로라도 크게 무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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