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소년 합창단 26-27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내한 공연
중세 시절 교회 안에서 여성은 침묵을 강요받았고 미사에서 여성이 노래하는 건 금기였다. 그러나 전례와 성가에서 장려한 합창을 행하기 위해, 지금은 소프라노가 담당하는 고음부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했고 그래서 필요했던 존재가 보이 소프라노다.
영국의 고음악 전문가인 로저 노링턴 등 일부 ‘정통 음악’ 고수파는 소년 합창단의 가창이 문제되지 않던 바흐 시절 작품에서도 보이 소프라노를 배제한다. 반면 작고한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바흐 칸타타와 수난곡에서 빈 소년 합창단을 적극 활용했고 격찬을 받았다.
고래를 불문하고 종교곡에서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내 아이들은 '신의 언어를 전하는 존재' ‘천사’로 비유되곤 한다. 지금도 주요 서방 선진국들은 각국의 종교적 배경에 맞는 대표급 소년 합창단을 갖고 있다. 성 토마스 합창단(독일),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합창단(영국), 파리 나무 십자가 합창단(프랑스)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도 명성을 유지하는 빈 소년 합창단이 이달 26-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빈 소년 합창단은 1498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칙령으로 조직되어 오랫동안 궁정성가대로 기능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과 함께 합창단도 존폐의 기로에 섰지만, 대중 콘서트로 영역을 확장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합창단을 거친 전설적인 작곡가들의 이름(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루크너)으로 네 팀을 조직해서, 세 팀은 전세계 투어를 돌고, 한 팀은 본국에 남아 호프부르크 성당의 일요 미사를 담당한다. 1980년대까지 철저하게 순혈주의를 고집하다 1990년대 이후 오스트리아 거주 외국인 자녀로 입단 자격을 완화했다. 보통, 변성기가 찾아오는 14세를 전후해 소년들은 합창단을 떠난다.
가수를 향해 개인과 집단이 바라는 특정한 이미지를 투사하고, 남성의 고음을 희구하는 욕구는 과거에도 있었다. 변성기가 지났지만 고음을 낼 수 있는 남성은 클래식 시장에서 보통 알토에서 메노 소프라노의 음역을 가성으로 노래하는 카운터 테너가 됐다. 일본의 도모타카 오카모토처럼 소프라노의 음역까지 치고 올라가는 남성은 ‘소프라니스타’라는 별칭을 준다.
중세 이탈리아 수도원은 2차 성징이 이뤄지기 전, 소년의 남성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방편으로 물리적 거세를 실시했다. 바티칸도 시스티나 성당 성가대 소속 소년들의 거세를 부추겼다는 사실이 학계 연구로 밝혀졌다. 보이 소프라노의 음질을 지속시키면서 가성으로 내는 카운터 테너의 아리아에선 맛 볼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을 진성의 카스트라토에 기대했다.
나폴리 출신의 카를로 브로스키(1705-1782)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카스트라토로 평가된다. 1994년 브로스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파리넬리’는 현재 오페라 무대를 수놓는 일급 카운터 테너들이 일제히 격찬하는 영화다. 필리프 자루스키, 이에스틴 데이비스 같은 인재들이 보이 소프라노 시절의 성대 근육을 더듬으면서 3옥타브 반을 커버한 브로스키의 카리스마를 영화를 보고 모방했다. 영화에는 활동명 파리넬리가 빈, 런던, 나폴리를 순회하면서 극한의 발성을 보이면 여성 관객이 실신한 역사적 사실을 장면에 담았다.
이제는 여성과 소년이 낼 수 없는, 야성적이지만 관능적인 소리가 카운터 테너에서 나올 때, 관객은 자연스레 ‘파리넬리’를 연상한다. 관객이 소년의 미성이나 카운터 테너가 지르는 고음에서 쾌감을 느끼고 프로모터는 티켓 수입을 계산하는 동안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 소년 합창단의 합숙 생활 동안 급우간 성폭력이 유명 단체에 만연했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다. 미국 출신의 유명 카운터 테너 데이비드 대니얼스는 동성 강간 혐의로 사실상 공연계에서 퇴출됐다. 소년 합창과 고음악 저변에 벌어진 인권 유린 분위기를 관객도 취향을 앞세워 그동안 눈감은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열세 살 즈음의 보이 소프라노에게 ‘현재’는 곧이어 닥칠 ‘상실의 시간’이다. 순간이 지나면 최상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데 소년 합창만의 정수가 있다. 1705년 오늘(1월 24일) 태어난, 파리넬리도 영화상으로 감동하고, 잊혀지는 게 순리다.
한정호 객원기자ㆍ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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