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놓치다/송명희
김장배추 모종을, 일주일이나 넘기고 심었다
핑계가 왜 없으랴
아픈 이의 병간호 때문이라고
그때 위중한 시기였다고
뒤늦은 까닭을 땅에게 하늘에게 고하며
백여 포기를 꼼꼼히 비닐 구멍마다 물 듬뿍 주며 심었다
배추가 실하게 자라긴 잘 자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무농약으로 적당히 벌레도 먹고
배추흰나비도 날아오고
이파리 색깔도 보기 좋게 푸르렀다
허나 옹이가 생기지를 않는 것
시간이 지나도 그 결구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
속이 안 차는 빈방이었다
두둥실 떠오르는 달이 만월이 되어야
우주의 기운이 성하듯
아 그 절정의 에로틱한 꽃잎들이
기다려도, 기다려도 생기지 않는 거였다
후회스럽고 애가 타도
때를 놓친
그 한 끝 때문에, 천기 때문에
우주를 감싸고 있는
분홍빛 그 신방의 불이 켜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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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이들이 물었다
그이는 어떠니 아직도 병중이니?
■안타까운 시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시를 읽고선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가 생각났다. 그리고 왕자웨이의 영화 「동사서독」 가운데 "내가 가장 아름다웠을 때 내가 사랑한 사람은 내 곁에 없었다"라는 대사도 떠올랐고. 물론 사연의 맥락은 다 다르다. 하지만 그저 딱하다고 여기고 눈길을 거두기엔 모두 다 너무 애절하다. 게다가 시의 마지막 문장은 어쩌면 '그이'마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애써 숨기고 있는 듯해 말을 더하기가 어렵다. 제발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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