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왜 도박에 빠졌나]下. "도박? 게임이죠"…모호한 경계에 위험성 몰라
확률형 아이템에 익숙해진 청소년, 도박시스템에도 무뎌져
경마와 판박이 '달팽이 레이싱'·불법스포츠도박 거리낌 없어
부모·교사는 게임중독 치부…외국선 법규제 움직임 확산
온라인 불법 도박 중 하나인 '달팽이 레이싱' 장면. 이 게임을 기반으로 한 불법 배팅사이트들에서 도박이 이뤄진다. 1등 달팽이를 맞추면 배당률에 따라 돈이 지불된다./사진=애플리케이션 캡쳐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지난달 30일 서울 강서지역의 한 분식집. "한 달 용돈을 몽땅 잃었다"는 친구의 말에 아이들이 깔깔거렸다. 돈을 잃은 당사자는 스트레스에 밤을 지새웠다지만 도박을 그만둘 기미는 없어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사다리 게임'에 집중했다. '도박 아니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그냥 게임'이라고 답했다.
불법 도박에 빠진 청소년 중 상당수가 게임과 도박을 구분하지 못하며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확률 게임' '확률형 아이템'에 익숙해지며 도박 시스템에 무뎌진 청소년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 불법 도박에 거부감 없이 발을 들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주에서 1등을 할 달팽이를 맞추는 '달팽이 레이싱'은 청소년들이 많이 하는 확률 게임 중 하나다. 달팽이를 '말'로 교체하면 경마 시스템과 판박이다. 신종 도박인 '소셜 그래프'는 상승하는 그래프가 멈추기 직전 '출금' 버튼을 눌러 해당 지점에 적힌 배당률대로 돈을 지급받는 시스템이다. 단순한 방식이어서 중학생도 많이 한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학생들은 불법 스포츠 도박을 또 하나의 즐길거리로 여긴다.
전문가들은 게임 형태를 띤 온라인 불법 도박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접근하기 쉬운 탓에 청소년들이 불법으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권선중 침례신학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많은 청소년이 실제로 도박을 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것은 게임이라고 여긴다"며 "경계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당사자뿐 아니라 부모와 교사들도 청소년 도박을 단순히 '게임중독' 문제로 치부한다. 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도박꾼'으로 비칠 것을 염려하고 학교는 불법 도박이 만연한 학교처럼 취급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도박 예방교육을 꺼리는 이유다. 또한 기존 도박이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온라인 불법 도박은 눈에 보이지 않아 인식하기 어려운 탓도 크다.
'확률형 아이템'의 유행도 청소년들이 도박에 익숙해지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게임은 최초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기만 하면 게임 내 모든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익이 늘지 않자 업체들은 게임 자체는 무료로 전환하는 대신 확률형 유료 아이템을 만들어 매출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들 게임은 일정 단계 이후로는 무료로 즐기기에 한계가 있다. 또한 외관·성능 등이 화려한 '한정판 캐릭터·아이템'을 만들어 과시욕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과금을 유도한다. 특히 또래 집단에서의 소속감을 중시하는 청소년들은 무리해서라도 캐릭터·아이템을 뽑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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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미국에서는 확률형 아이템 '루트 박스(loot box)'를 법률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벨기에 게임위원회는 지난 22일(현지시간) 확률형 아이템 방식이 도박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달 게임물관리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졌지만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김지선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예방치유과 전문위원은 "청소년과 부모, 교사를 상대로 게임과 사행성 게임, 불법 도박을 구분하는 법을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현 강남직업전문학교 심리학계열 교수는 "게임인지 도박인지 모를, 매출을 위한 게임에 이용자들의 불만이 늘고 있다"며 "자구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게임업계는 자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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