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못/석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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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에 박힌 못이 자주 빠져나왔다 싹수가 노란 못이 자꾸 튀어나왔다 못된 아이라고 아버지가 내 머리에 망치질을 했다 우리 집은 가위보다 망치가 더 빨리 닳았다


 박힌 못을 뽑다가 두통이 오면 도로 박았다 두통이 심할수록 소리가 크게 났다 박힌 나보다 박은 아버지가 더 아파하는 것 같았지만 모른 척했다 납작한 못대가리로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무리

 아버지의 손바닥에 박힌 못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 역시 모른 체했다 박을수록, 더 단단하게 박힐수록 서로 모른 체하기 편했다 아버지는 요즘도 못을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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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마다 주렁주렁 가족들이 걸려 있다 내가 방바닥에 툭 떨어지자 아버지가 망치를 들고 온다 나는 못 하나에 꼼짝 못 하는 척을 하고 아버지는 아직도 힘이 센 척을 한다


■이 시를 읽고 어떤 폭력의 기원을 상상해도 좋다. 그리고 그 폭력이 누군가를 어떻게 길들여 왔는지에 대해 생각해도 무방하다. 또한 폭력을 당한 자가 자기 자신의 생과 의식을 어떤 방식으로 굴절 혹은 왜곡시켜 가는지에 관해 심각하게 논의하는 일도 정당하다 할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의 삶 가까이에 만연한 폭력의 심각성과 그 지속성에 대해 분노를 표해도 마땅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왜 이 시는 슬픈가. 물론 모든 폭력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왜 이 시는 슬픈가. 나는 다만 이런 말을 얹고자 한다. '아버지를 결코 용서하지 마라. 아버지가 연루된 더 크고 본질적인 폭력의 세계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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