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석학 칼럼] 트럼프 정부의 포퓰리즘 감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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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이런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의 지도자는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깊었다. 온갖 수입장벽을 세우고 선호하는 산업 부문에 저금리 신용융자를 제공했다. 정부의 빚은 쌓일대로 쌓였다.


그러나 '스트롱맨'이 되고 싶었던 지도자는 예산적자 증대로 공공부채를 더 늘리려 들었다. 그래야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정부는 서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관급계약은 지도자 측근들에게 돌아갔다.

이 나라는 후안 페론(1895~1974) 정권 하의 아르헨티나다. 그는 1946~1955년, 1973~1974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1900년경 세계 부국 가운데 하나였던 아르헨티나는 이후 수십년간 지속불가능한 경제정책 탓에 내리막 길로 치달았다. 시민들은 단기적으로 배가 불렀지만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 금융위기, 주기적인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재앙에 시달려야 했다.


이 나라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치하의 미국이라고 가정해보자. 상황은 다를 게 별로 없다.

미국이 지금 라틴아메리카식 포퓰리즘으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우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과거 미 공화당 의원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행정부가 재정을 낭비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 등 '재정적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는 공화당 인사들은 대규모 감세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로 이어질 게 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세 법안 처리에 혈안이 돼 있다.


공화당은 의회와 백악관을 장악하고 있지만 내분으로 어수선하다. 조세지출 중 어느 부분을 삭감해야 대규모 감세에 따른 구멍을 메울 수 있을지 이견이 분분한 것이다. 일치된 건 대규모 감세다. 공화당 정치자금 기부자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가 백악관 주인이었던 2001년에도 감세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됐다. 당시 감세가 대다수 미국인에게 이득을 안겨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난무했다. 결론적으로 당시 감세는 부자의 배만 더 불려줬다. 감세로 미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고 중산층 지갑이 더 두둑해졌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감세로 예산적자와 국가부채만 늘어났다. 이로써 국가안보와 금융안정에서 미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은 약해지고 말았다.


과거 워싱턴 정가에서 중시했던 게 '팩트'다.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 공화당은 팩트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돼 관심은 줄고 말았다. 이는 하원에서 특히 심했다. 현재 하원 세입세출위원장인 케빈 브래디(공화ㆍ텍사스) 의원은 당시 다소 불편한 팩트에 눈 돌리기 싫다고 말한 바 있다.


공화당은 특히 법인세 대폭 인하를 주장한다. 그러나 법인세를 내려봐야 근로자들의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제시한 원대한 청사진을 두고 이렇게 꼬집었다. "라이언 하원의장이 제시한 청사진의 예상 효과에 한계가 있으며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 소재 민간 싱크탱크인 조세정책센터(TPC)는 공화당이 제시한 감세안에 담겨 있을지 모를 긍정적 효과를 모두 검토해봤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공화당의 감세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경우 시행 첫 10년 사이 미 연방정부의 세입은 2조4000억(약 2690조원)~2조5000억달러, 이후 10년에 걸쳐 3조4000억달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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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는 이처럼 팩트에 근거한 합리적 분석결과를 두고 '부정확한 픽션'이라며 거칠게 비난했다. 트럼프 시대 미국의 포퓰리즘은 일하는 사람에게 많은 이득을 안겨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돈 많은 이들에게만 이익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무책임한 포퓰리즘의 결과는 똑같다.


사이먼 존슨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번역 이진수 기자
@Project Syndicate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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