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박근혜 속마음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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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는 유신체제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고 비판을 하면 사형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영장 없이도 사람을 체포할 수 있었다. 버스에 동석한 여고생에게 정부 시책을 비판하는 얘기를 했다가 붙잡혀가 실형을 사는 시대. 1970년대는 '긴조(긴급조치)의 시대'로 불렸다. 긴급조치는 사법살인의 도구였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긴급조치를 근거로 민청학련 및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군사재판부를 구성했다.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내놓은 '민청학련ㆍ인혁당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에 당시 재판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자세히 나온다. 재판부는 검찰 측이 신청한 증인들에 대한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을 불허했다. 검찰이 신청한 증인들은 심지어 변호인들이 가택연금을 당해 법정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증언을 했다. 재판부는 재판기록 공개를 거부했고 공판조서는 변조됐다. 피고인들은 '접견 금지자'로 분류돼 수감 중에 가족을 면회할 수도, 변호사와 상의를 할 수도 없었다.

위원회는 "피고인 측이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인을 여러차례 재판부에 신청했지만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적었다. 시인 김지하 등을 변호한 강신옥 변호사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가 감옥에 갇혔다. "법은 정치의 시녀이며 권력의 시녀이다. 검찰관이 애국학생을 내란죄,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사형에서 무기를 구형하는 것은 사법살인 행위이고 직업상 변호인석에는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피고인들과 뜻을 같이 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겠다.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좋으며 악법과 정당하지 않은 법에 대하여는 저항할 수도 있다."


김종필 국무총리는 법정에 자리가 별로 없다는 이유를 들어 피고인들의 가족 중 한 사람만 재판을 방청하도록 했다. 재판 내용을 오해해 잘못 보도할 수 있다며 외신기자의 취재를 막았다. 중앙정보부 국장은 구치소를 찾아가 피고인들에 대한 각종 금지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시했다. 피고인의 방어권 따위는 깡그리 짓밟혔다. 기소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 합헌인지 위헌인지를 따질 수 있도록 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제도는 꿈꾸는 것조차 어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그 부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두 가지"라고 말해 아버지 시절의 판결과 피고인들의 무죄를 확정한 재심 판결을 등가로 여기는 시각을 내비쳤다. 둘 중 하나일 것으로 여겼다. 사법절차 기초에 대한 이해가 심각하게 부족하거나, 과거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우습게 보거나.


"이제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 뜻에 맡기겠다."(지난 16일 박 전 대통령의 법정 발언) 못 믿겠다면서 맡기겠다니 이미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이지만, 그래도 해석을 하자면 '재판부가 여론의 압력에 굴복해 헌법과 양심을 저버려서 더는 믿을 수가 없다'는 정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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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의 구속연장 결정에 반발함과 동시에 재판 전체를 '부당한 것'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수사 단계에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증거인멸 우려를 갖게 만드는 행동을 했고 재판에 불성실하게 임했다. 공범 다수가 구속이 연장된 채로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과 정황을 근거로 구속을 연장하는 결정을 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오래전 그 재판처럼 방어권이 훼손된 사례가 한 건이라도 있는지, 검찰 측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에서 문항 한 개라도 타의로 놓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둘 중 하나일 것으로 여겼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둘 모두인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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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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