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대학 6학년, 취준생(취업준비생)이다. 취업 길을 찾아 헤매느라 졸업을 늦췄기 때문이다. 군대를 마치고도 그렇다. 다들 하는 일이다.
우리는 지방에 살고 있고, 아들은 이른바 스카이 대학이 아닌 서울의 한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 일류대학에 못갈 것에 대비해 아들은 일찌감치 전력을 다해 '스펙'을 쌓았다. 이미 중고교 시절에 어학연수도 했고, 어렵사리 대기업 인턴도 거쳤다. 토익은 만점에 가깝고, OPIc도 AL로 최상위, 한자 2급, 학교 성적도 ALL A다. 수험생 입장에서 확실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인적성' 시험을 위해서도 적지 않은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렇게 대학 4학년이 되어 취업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원하는 회사는 물론 그만 못한 기업에도 수없이 원서를 냈다. 서류심사를 통과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 이후 과정도 첩첩산중이었다.
그렇게 2년여. 내가 보기에 아들은 폐인이 되어갔다. 부모도 삶의 낙을 잃었다. 아들의 거듭되는 실패는 바로 부모의 불행이었다. 알게 모르게 가족관계까지 붕괴돼가는 것을 깨닫고 우린 소스라치게 놀랐다. 급기야 온 가족이 아들의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미는 인터넷을 뒤져 필요한 정보들을 찾아 헤맸다. 아빠는 아들의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잘 쓰기 위해 '문장론' 책까지 사 읽어댔다.
면접이 있을 때는 언제나 이 어미가 아들을 '수행해' 함께 서울행 열차를 탔다. 면접 전에 회사근처의 숙박업소를 미리정하고, 필요한 '일습'을 싸들고 상경했다. 책과 참고 자료는 물론, 당일 입을 양복에 와이셔츠, 넥타이도 옷걸이 케이스에 담아 소중히 따로 들었다. 면도, 화장품, 헤어드라이어와 면접날 아침, 입이 '짧은' 아들의 먹을거리까지 챙겼다. 시골집엔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까지 계셔 쉽게 집을 비울 수 없기 때문에, '못됐다' 거나 '그럴 수 있느냐'는 수근거림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들의 취업을 위한 일이라면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훨씬 더 오래 세상을 살아가야 할 내 새끼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면접날엔 아들이 돌아 올 때까지 나는 5~6시간, 때론 온종일 엎드려 기도에 매달린다. 남편도 직장 일하면서 틈틈이 기도를 한다. 이 기도는 우리 가족만 하는 게 아니다. 우리내외가 20년 넘게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도 목사님을 비롯한 '기도 도우미'들이 서울 면접시험을 보러간 내 아들의 합격을 위해 새벽기도를 한다. 그런 덕분인지 아들은 마지막 면접까지 가는 횟수가 늘었지만 여전히 낙방을 반복하고 있다.
낙방을 밥 먹 듯 하고 있으나, 내 아들은 그래도 상황이 양호하다. 수많은 취준생들이, 공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스스로 생활비나 취업준비를 위한 비용을 벌어야하고, 학자금 융자며 그동안의 '마이너스'를 막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한다. 하루에 두끼만 먹는다고도 했다. 왕성하게 일하고, 사랑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 황금기에 인생을 쓰레기 속에서 허덕여야만 하니, OECD 국가 중 최저1위의 저 출산국은 너무나 당연하다. 어디 그 뿐인가. 그들의 부모는 대부분 퇴직할 나이에 다다랐다. 모든 것 자식 교육에 쏟고 가진 것 없이 고통스런 늘그막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어쩔 것인가. 오늘도 그저 기도 할 뿐이다.
송명견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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