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는 전 세계가 단일 경제권에서 동일한 규칙에 따라 자유롭게 경쟁하면 각 주체의 합리적인 선택에 따라 전체적인 부가 증가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모든 국가의 경제체력이 같지 않은 상황에서 무한 자유경쟁이 반복되면 기득권을 가진 선진국들만 계속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1990년대 초 국제화·세계화가 화두로 떠오르기 전부터 대기업을 필두로 전 세계로 활동영역을 넓혀왔다. 내수시장의 한계를 절감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답을 구하기 위해 “해외로! 세계로!”를 외치면서 지구촌 곳곳을 누볐다. 많은 기업이 1980~1990년대의 호황기를 거쳐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했을 때 경영의 핵심을 생산에서 품질로 전환한 덕분에 세계 1등 제품을 여럿 쏟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산과 생산자 중심이 아닌 소비와 소비자 중심의 시대다. 한 나라 고유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타국의 요소들과 융합해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하는 방식 말이다. 헤겔의 3단 논법 식으로 말하면 ‘내 것’에서 ‘네 것’을 거쳐 ‘우리 것’으로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나’ 일변도의 국제화·세계화와는 전혀 다른 양식이다.
맥도날드는 인도에서 햄버거 재료로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배제하고 KFC는 중국에서 아침메뉴로 두유와 죽을 팔고 있지만 토종 프랜차이즈의 기세에 눌려 사업권을 넘기고 직영을 포기하고 있다. 독자적인 검색 알고리즘을 개발해 전 세계 인터넷 검색시장을 장악한 구글이지만 한국에서는 네이버와 다음·네이트에 이어 시장 점유율 4위를 기록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흐름을 형성할 것 같던 한류의 기세가 수그러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류의 확산이 아시아 국가 간의 문화적 동질감에서 출발했다고 하지만 한류가 유행하던 지역이 원래 공유하려고 했던 문화적 동질성이 무엇이고 어떤 이유에서 수용됐는지 돌아보지 않은 결과다. 현지화는 배제한 채 내 시스템을 가다듬고 기술력을 높이는 자기중심적 글로벌화는 반쪽짜리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누구인가?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 단계씩 도약했고 변화의 속도가 본격적으로 빨라지는 21세기의 문을 IMF 외환위기 조기 극복과 남북 정상회담으로 누구보다 먼저 힘차게 열어젖힌 나라가 아닌가? 현 난국을 타개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이자 진정한 글로벌화 능력을 갖춘 글로벌 플랫폼이다. 근면성은 원래 갖추고 있으니 합리성은 미국에서, 포용성은 유럽에서 배우고 중국이나 동남아를 보면서 어려웠던 시절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창의성·다양성·포용성과 이를 뒷받침할 의사소통 능력의 배양에 힘써야 한다. 지금은 진정한 글로벌화가 무엇이고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 거듭 자문할 때다.
오영호 전 코트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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