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이 확정되자 ‘을(乙)들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아우성지만 본격적인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갑(甲)과 을의 대결을 넘어 정부와 대기업의 싸움으로 확대될 수도 있고,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야당과 정부의 대리전으로 양상이 바뀔 수도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대를 멘 ‘수퍼리치 증세’는 전선이 전개될 방향을 알려 준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매장 운영에 들어가는 다른 비용 요소가 상수(常數)로 고정된 상태에서 임금만 변수(變數)가 되면 ‘을과 을의 전쟁’이라는 프레임은 틀린 게 아니다. 그런 가정에서는 월 매출 1000만원인 편의점 점원이 한 달 일하고 받는 임금이 30만원 올라가면 편의점 점주의 소득은 그 만큼 줄어든다. 경제 생태계의 최하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알바와 그 바로 위 계층인 고용주가 벌이는 밥 그릇 싸움은 제로 섬 게임이 맞다.

최저임금만 변수라고 가정하면,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률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된, 혹은 소득이 줄어들게 된 고용주들이 ‘알바’를 자르고 본인이 직접 계산대에 서거나 서빙을 할 것이라는 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그나마 있던 일자리를 잃게 돼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변수가 추가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본사에 내는 가맹점 수수료를 낮추거나 임차료 부담을 줄여주면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부담이 대기업이나 건물주에게 전이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앞에 예를 든 월 매출액 1000만원인 편의점이 수수료로 매출액의 35%를 낸다고 가정할 경우 수수료 요율이 3%포인트 낮아지면 비용이 월 30만원 감소한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늘어나는 점원 월급 30만원을 상쇄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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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부담은 편의점 점주가 지는 것이 아니라 GS리테일이나 BGF리테일이 지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런 일을 하라고 김상조 위원장을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보낸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대기업이 김상조 위원장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을과 을 사이에 형성된 전선이 정부와 대기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대기업과 타협할 수도 있다. 정부가 수수료율 인하로 발생하는 GS25나 BGF리테일의 매출 감소분에 대해 세제혜택을 준다면 최저임금 상승의 부담은 모든 국민이 나눠서 지게 되는 것이다.


꼭 대기업만 타깃이 되란 법도 없다.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면서 상가에도 적용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럴 경우 최저임금 상승의 부담을 건물주도 일정 부분 나눠지게 되는 셈이다. 조물주 위에 계신다는 건물주들이 자유한국당의 힘을 빌려 조직적인 저항에 나선다면 을들의 전쟁은 정부와 야당의 대리전으로 바뀔 수도 있다. 포성(砲聲)은 울렸고, 전황이 어떻게 흘러갈 지는 알 수 없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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