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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바꿔봐요] 박사, 교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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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의 주문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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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의 뜻을 받들겠다는 새 정부는 오래 된 잘못들을 걷어내기 위해 과거 결정했던 일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신규원전건설 백지화 결정에는 기존의 전문가들을 공론화 과정에서 배제할 계획이라 합니다. 지난 정부에서 결정했던 기념우표 발행은 당초 심의했던 분들이 생각을 바꾸셔서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합니다. 기존의 전문가들을 배제할 것이냐, 아니면 당초 심의했던 분들로 하여금 다시 심의토록 할 것이냐 하는 결정을 담당공무원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고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속내이건 빈말이건 마이크만 갖다 대면 ‘국민의 뜻을 엄중하게 받들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에 국민들은 실속없이 우쭐해집니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이 모든 분야에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구체적인 사안에 들어가면 대통령도 그 분야를 오래 다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전문가라고 부릅니다.

‘국민’이라는 단어만큼 ‘전문가’ 라는 말도 매우 추상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 분야에 정통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은 영어로 ‘Expert’라 하고, 우리가 흔히 쓰는 ‘프로(Pro)’라는 말은 어떤 일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을 말합니다. 전문가라도 생명과 재산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분야에서 일하려면 국가가 인증하는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전문의(Certified Physician)나 기술사(Professional Engineer)는 일정한 학업과 실무수련을 거치고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인문사회분야 등에서는 전문자격증이라는 것이 거의 통용되지 않습니다.

대졸자 비율이 세계 1위인 우리나라에서 교수는 당연히 박사학위 소지자이고, 당해 분야에는 전문가라고 인식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학력 인플레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논문을 대필시키거나 남의 논문을 베끼고, 심지어 학위를 위조하여 세상에 나와서 할 일이란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밖에 없습니다.
기술사 자격은 ‘국가가 인증한 분야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책임과 권한이 있다’는 것인데, 이 정의(定義)가 전문가의 정의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박사학위도 어느 분야에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명제에 접근하는 방법과 절차를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박사가 곧 전문가라는 인식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교수채용에 박사학위를 필수요건으로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교수를 뽑을 때 많은 경우 박사학위는 가점이고 기본은 경력, 실력, 전문성입니다. 예를 들면, 암에 걸린 사람이 찾는 의사는 그 암을 많이 수술하고 완치율이 높다고 검증된 의사이기 때문이지 그가 일류대학 교수이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반면에 혼자 공부를 했다고 그 사람을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근거도 없습니다. 의사들은 혼자 공부하고 오는 환자들, 특히 TV와 스마트폰으로 지식무장을 하고 따지는 아줌마들 때문에 곤혹스럽다고 합니다. 병 증세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좋은데 환자가 처방까지 내놓는 것은 결국 자기에게 손해일 뿐인데도 스스로 전문가적 지식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일반인들을 상대로 말 잘하고 글 잘 쓴다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언론에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논리는 상당한 학문적 수준을 바탕으로 하므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전문가가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재주가 있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 안타까운 점이죠. 사이비 전문가들이 그 틈을 파고 들어갑니다. 사이비 전문가들의 양심에 호소한다는 것은 애초에 틀린 이야기이고, 국민들이 바로 판단하도록 그들을 잘 걸러내 주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이비냐 아니냐의 구분은 공자님 말씀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 즉,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는 이것이 아는 것이라는 겁니다.

새 정부에는 각 분야마다 교수출신들과 사회운동가 출신들이 청와대와 내각 등에 중용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나랏일에 참여시키기까지는 그 사람을 어떤 형식으로든 이 사회에서 검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전문가(Expert)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성과 객관성입니다.

정부가 바뀌자 촛불의 도구가 된 공무원,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위원회에서 심의를 해주는 자칭 전문가들, 모두 그저 자리와 돈 몇 푼에 붓을 꺾고 양심을 접는 사이비들로 보입니다. 대선 때만 되면 부엌 문 앞에서 생선대가리가 던져지기를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권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자칭 전문가들이 많다 합니다. 아무리 자기를 파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국가 경영에 임해서는 스스로에게 수 없이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나랏일을 결정할 전문가 자격이 있는가?"

교수 출신으로 새로 정부부처의 장이 된 분이 가업을 승계한 대기업 경영자들에게 “네 할아버지처럼 하면 안 된다"라고 강의하듯 질타하더군요. 이분은 공직자로서의 틀이 아닌 것 같으니 그냥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전문가를 가려내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야말로 나라 경영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전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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