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 멈칫했다. 뼈만 남은 손. 죽음을 앞둔 사람의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싸늘한 느낌. 멈칫거리는 내 모습에서 기척을 느꼈을까. 손 선생이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전염병이 아닌걸요." 얼굴이 후끈했다. 나는 곧 손을 뻗어 손 선생이 건넨 사탕 두 알을 받았다. 그리고 입안에 털어 넣은 뒤 천천히 녹여 먹었다.
기척을 느꼈을까. 손 선생이 눈을 떴다. 눈길이 마주치자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럴 힘이 없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더 흘렀다. 열두 시. 손 선생이 눈을 번쩍 떴다. 나에게 일으켜 달라고 했다. 아무 힘도 없는 어른의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앉히기는 매우 어려웠다.
"열두 시가 됐지요?"
"예, 맞습니다. 어떻게 아세요?"
"느낌으로요. 밝기가 이 정도 되면 느낌으로 알아요."
"조금만 힘이 붙으면 걷기도 하실 텐데…."
오후 한 시 30분쯤, 손 선생의 부인이 왔다. 얼굴이 핼쑥했다. 의사들이 손 선생의 콧구멍을 통해 목에 튜브를 끼울 때 부인이 나를 대기실로 불렀다. 그날은 손 선생이 마지막으로 정신이 온전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온전한 정신은 내가 만나본 뒤, 그러니까 부인의 손에 이끌려 병실에서 나올 즈음 다시 컴컴한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손 선생은 "언젠가 강원도 산골에 있는 고향에 돌아가 정착하겠다"던 꿈과 함께 뮬하임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곳은 검붉은 담장에 둘러싸인 적막한 장소다. 늘 사람을 좋아한 그가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상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손 선생은 내가 오래전에 독일에서 생활할 때 가족처럼 돌봐주었다. 따뜻하고 너그러웠다. 내 어머니는 생전에 "지나가던 이가 내 아이의 코를 한 번만 닦아 주어도 평생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이라고 가르쳤다. 내게는 손 선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선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마다 뼈만 남은 그의 가슴을 떠올린다. 이상이 도쿄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 김유정의 그 가슴. '유정의 젖가슴은 초롱보다도 앙상하다. 그 앙상한 가슴이 부풀었다 구겼다 하면서 단말마의 호흡이 서글프다….(失花)'
손 선생의 초롱은 작았지만 그 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넓었다. 그리고 그곳은 언제나 사랑으로 충만했다.
추모하며.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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