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미래다]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촛불시민…민주주의는 전진한다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이제 곧 저는 살아오는 종철이를 만날 겁니다. 시퍼렇게 되살아오는, 살아서 돌아오는 민주주의를 만날 겁니다.”
지난 1월14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2번째 촛불집회에서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가 연단에 올라 한 말이다. 열사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다 숨진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박종부씨의 말처럼 민주주의를 훼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러났고, 새 대통령이 뽑혔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상징과 같은 두 개의 사건이 30년의 세월을 두고 일어났다. 30년 전에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쟁취했고, 지난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는 국정농단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박종철 열사였다. 그는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구타와 전기고문에 이어 물고문을 당하다 숨을 거뒀다. 수배 중이던 선배가 하숙집에 찾아와 하룻밤 재워줬다는 이유로 끌려가 당한 일이다.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경찰청장)은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희대의 거짓말로 고문살인 사건을 덮으려 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 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1987년 1월26일 추모 미사에서 한 말이다.
이후 전국적으로 추모 시위가 벌어졌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유보한다는 ‘4·13호헌’으로 맞섰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음을 폭로했고, 곧이어 범인 축소 조작 모의가 사실로 드러난다.
그리고 6월9일,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 열사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열린 ‘이한열 동판 제막식’에서 “저는 당시 학생회장이었는데 ‘오늘은 물러서지 말자’고 해놓고 도망갔다. 유일하게 물러서지 않았던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은 것”이라며 눈물의 회고를 했다.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채 피지도 못한 채 무참하게 꺾여버린 두 청년의 죽음은 거대한 분노의 물결을 일으켰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전 대통령 사면복권 등 8개 항을 담은 ‘6.29’ 선언으로 백기를 들었다. 중태에 빠져있던 이한열 열사는 7월5일 결국 숨을 거뒀다.
30년이 지나 일어난 촛불집회는 과거와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특정 단체 주도가 아니라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주된 동력이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독거총각결혼추진회’ ‘혼자온 사람들’ 같은 깃발이 휘날렸다. 물론 그 중에는 6월항쟁을 겪었던 중년들이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게 나라냐”며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대거 참여했다.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의 피를 먹고 피어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제는 평범한 촛불시민들이 나섰던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전진하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