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노인의나라②] "내게도 청춘이 있었는데..." 인력시장에 몰리는 고단한 노인들
나이 때문에 중소현장만 전전…고령 노동자 사이 경쟁 심화 추세
수수료 빼면 하루 10만원 남짓… 이마저도 허탕치기도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어버이 날'을 열흘 가량 앞둔 지난 달 28일 오전 5시. 해 뜨기 전 서늘한 공기에 어깨를 움츠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지하철4호선 사당역 인근의 한 건물로 모여들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일용직 노동자를 현장과 연결해주는 인력사무소다. 하루 일감을 찾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에 모여든 인부들은 저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빼어 물며 잡담을 나눴다. "오늘은 일이 있으려나…". 어슴푸레한 새벽녘에 퍼지는 담배 연기는 이들의 희끗한 머리카락처럼 선명했다.
사당역 근처에 있는 인력사무소에는 주로 장·노년 인부들이 몰려든다. 통상 60~65세 이하로 나이 제한을 두는 대형 건설 현장보다는 나이 제한이 없는 중·소 현장 일을 주로 알선하기 때문이다.
이 인력사무소의 김주형(가명) 사장은 "대형 건설 현장이라고 일당이 더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장기 공사가 많아 꾸준히 일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노동자들이 선호한다"면서 "다만 나이 제한이 엄격한 편이라 노년층에 접어든 노동자들은 중소 공사현장에서 '하루살이'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정모씨는 "건설 현장 일은 체력보다는 경험과 요령"이라며 "수십년 째 건설 현장을 누비며 쌓은 경험도 있고 체력도 아직 버틸만 하지만 큰 현장에서는 이제 잘 받아주지 않는 게 아쉽다"고 거들었다. 정씨는 자신을 1945년생, 닭띠라고 소개했다.
일자리를 두고 벌이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김 사장은 "일당 20만짜리 타일공 등 숙련된 인력은 부족하지만 단순 노동만 가능한 '신입'들은 넘쳐나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고 했다. 일용직 노동자 시장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일용직 노무자 6년차에 접어든 조모(62)씨는 수십년 동안 다닌 은행에서 퇴직한 뒤 시작한 사업에 실패해 이곳까지 흘러든 경우다. 조 씨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보다 확연히 연령대가 높아져 요즘엔 60대 이상이 열 중 넷은 되는 것 같다"며 "평생을 경쟁 속에서 살았고, 그 경쟁에서 밀려 이곳까지 왔는데 여기서도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니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말했다.
몸이 성해 일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고령사회 속 노인들의 생활고(苦)는 이미 익숙한 현실이다. 올해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가계금융 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만 65세 이상의 노인빈곤율은 61.7%로 전년 대비 1.5%포인트 증가했다. 조사가 시작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일 뿐더러, 증가 속도도 다른 연령대 보다 훨씬 빠르다.
노인자살률과 노인행복지수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의 위치를 차지한 지 오래다. 노인들의 삶과 관련된 여러 지표가 동시에 악화되면서 노인들은 생계에서도 '노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고령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보듬어줄 보다 현실적인 사회 안전망을 바라고 있다. 인력사무소에서 만난 손모(66)씨는 "일당에서 중개수수료와 교통비 등 15%정도를 제하면 손에 쥐는 게 하루 10만원이 안 된다"며 "한 달에 200만원 정도는 벌어가야 가족들과 생활할 수 있는데 매일 나오기도 힘들고, 나온다해도 날마다 일자리를 구한다는 보장도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노인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늘린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일을 더 시키고 싶으면 건강·산재보험 등 좀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테두리에 우리를 넣어달라"고 말했다.
6시 무렵이 되자 인부들이 하나 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일자리를 얻은 이들은 바삐 걸음을 옮겼지만 허탕친 이들은 다시 담배를 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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