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다리가 몇 개나 될까요? 나이에 따라 대답이 다를 것만 같습니다. 열 개? 스무 개? 서른 개? 뒤쪽에 가까울수록 젊은 사람일 것입니다. 답은 서른한 개. 제 주위 사람들에게선 '열대여섯 개쯤'이라는 답이 의외로 많더군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순간, '언제 그렇게 많아졌을까'하고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다리 하나를 끊어놓으니 피난길이 막막해졌다던 6.25때 이야기는 이제, 전설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 장면이야 어찌 잊겠습니까. 이고 지고 난간을 기어오르는, 목숨 걸고 부서진 다리를 건너는 가여운 백성들.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 한 장으로도 또렷이 기억되는 그 공포와 전율. 우리 현대사에 찍힌 하나의 상징이지요.
그때 그이들이 저렇게 많은 교량들을 보면 무슨 얘기를 할까요. 한강교에 차례로 번호를 매기던 사람들은 차라리 순진하게 여겨지는 오늘입니다. 제1, 제2, 제3한강교…. 제3한강교의 의미는 사뭇 각별했습니다. 천릿길을 하룻길로 바꿔놓은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태어난 다리였으니까요.
혜은이 노래 '제3한강교'에 열광했고,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러 극장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것은 노래 한 곡의 히트가 아니었습니다. 강을 건너는 길이 '사지선다형(四枝選多型)' 문제의 보기만큼 늘어난데 대한 자축(自祝)이었습니다. 흘러가는 강물 위에서, 신세한탄이 아니라 사랑노래를 하게 됐다는 만족감의 표현이었습니다.
다리에 번호를 붙이는 일은 금방 멈춰졌지요. 숫자로는 감당되지 않을 일임을 예감한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이렇게 많아질 것을 예상하진 못했을 테지요. 무슨 다리를 이용하느냐는 질문 하나로, 서울 어느 지역에 사는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도 있을 만큼 늘었으니까요.
저는 지금 잠수교 위에 있습니다. 이 다리는 하나면서 둘이지요. 위는 반포대교, 아래는 잠수교. 한강 유일의 이층교량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 다리를 걸어서 건넙니다. 절반은 자동차길, 절반은 자전거와 보행자의 길이라서 맘껏 한눈을 팔아도 됩니다. 먼 산을 보며 팔자걸음을 걸어도 괜찮습니다.
서울 안에서, 여기만큼 보행자의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길도 드물 것입니다. 저만치, 미동도 없이 떠있는 청둥오리 떼가 이 다리 위의 평화를 증명합니다. 행인도 느낄 수 있습니다. 먼지나 매연은 삽시에 흩어져버리고, 경적은 쓸 일도 없습니다. 목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걸어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습니다.
물론, 진천 농다리(籠橋)나 영월 섶다리에 견주기는 어렵지요. 그러나 물소리를 듣고 물낯의 표정을 읽는 맛은 퍽 흡사합니다.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맞추면 강물이 말을 걸어옵니다. 충청도 강원도를 떠나온 물이 양수리에서 몸을 섞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잠수교는 여느 한강다리들과 분명히 구분됩니다. 물론, 통행량이나 도강(渡江)의 효율성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꼴찌를 면하기 어렵겠지요. 그러나, 잠수교는 제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태생부터 점잖고 겸손합니다. 하늘과 맞서는 물의 편입니다. 몸을 낮춤으로써, 물의 변화를 제일 먼저 읽어냅니다.
물의 부피와 날씨, 물의 숨결과 기분까지를 온몸으로 감지합니다. 해마다 일주일이나 열흘쯤은 흙탕물 속에 잠깁니다. 그런 이유로 한동안은 세상과 격리됩니다. '잠수(潛水)'란 단어가 지닌 먹먹하고 묵직한 슬픔을 느끼는 시간이지요. 그리하여, 이 작은 다리엔 남다른 내공(內功)이 쌓입니다.
잠수교는 '현수교'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조임금 능행(陵行)길에 놓이던 배다리(舟橋)의 긍지를 품지요. 물과 하나가 되려 하고, 사람과의 합일(合一)을 꿈꿉니다. 다리 한쪽에서 앞뒷문 열어놓고 쉬는 택시를 위해 바람을 모아줍니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땀을 식히는 퀵서비스 기사의 의자가 되어줍니다.
한여름, 한없이 밀리는 다리를 힘겹게 지나는 이들의 친구가 되고 싶어 합니다. '치유와 휴식의 다리'지요. 젊은 뮤지션, '자이언티(Zion T)'의 노래 '양화대교'가 떠오릅니다. 일하는 아버지들 생각입니다.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양화대교."
반포대교도 잠수교의 착한 마음을 아는 모양입니다. 마침 '분수 쇼'가 한창입니다. 잠수교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응원의 메시지 같습니다. 음악과 함께 쏟아지는 무지개 색상의 물줄기. 이층의 형이 일층의 아우를 위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고단한 행인들을 위해 펼치는 '물과 빛과 소리'의 잔치입니다.
이 시간 서울의 모든 다리 위에서, 번민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을 소리쳐 부르면서 안부를 묻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내가 어디 있는지' 묻고, '밥 먹었는지'를 궁금해 하는 친구와 가족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자이언티'의 노랫말 같은 희망의 인사입니다.
"행복하자/우리 행복하자/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행복하자 행복하자/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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