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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머리말/허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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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계신 곳은 헌책방이거나 도서관이거나 혹시 파쇄 공장―전원을 넣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들추어 보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니면 불길 날름거리는 목탄난로 앞에서 한 쪽 한 쪽 찢어 내다가 문득 서서 한 줄… 그 앞의 쪽은 이미 불태웠네요. 장렬한 불가역(不可逆)!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나무로 짠 서가나 유리 캐비닛 속, 숙환으로 별세한 교수의 연구실 두 줄로 쌓은 책장 어디서 톱밥이 되어 가거나
아무튼 반갑습니다. 그리고 안녕히. 어쩌면 저 역시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발그레한 얼굴로 이렇게 마주보고 있습니다. 우주의 이편과 저편, 삶과 죽음의 경계 가장 먼 곳에서 설핏 눈빛을 나눠 가졌죠.

[오후 한 詩] 머리말/허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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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직업은 여러 가지인 셈인데, 그중 하나가 책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안다. 머리말을 쓰는 게 어떠한 일이고 얼마나 힘든 수고인지 말이다. 머리말은 단지 본문에 앞서 책을 쓴 목적이나 대강을 적은 글도 아니고, 책을 내기까지 이래저래 애쓴 분들께 고마움을 표하는 데 그치는 지면도 아니다. 그리고 머리말은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도 몇 번이고 고쳐 쓰는 게 다반사다. 그러니까 머리말은 마지막까지 쓰고 다시 쓰는 더할 수 없는 정성의 끝자락이고, 책의 본문을 포괄하면서도 넘어서는 거의 또 다른 한 권의 책과 맞먹는 "불가역"의 자리다. 그래서 나는 책을 구하면 먼저 머리말부터 찬찬히 읽는다. 머리말에는 책을 내기까지의 고통과 즐거움과 고마움과 아쉬움과 바람이 모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한 사람이 한생을 다하기 직전 온 생을 통째로 다시 겪듯이. 그래서 "아무튼 반갑습니다. 그리고 안녕히."라는 저 짧은 두 문장이 다만 아득해 더 잇댈 말이 없어 그저 그 앞에 공손하게 마주할 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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