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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두 개의 작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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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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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뼈를 위한 변명>은 김강태(1951~2003)가 1995년에 낸 시집이다. 고려원에서 찍었다. 표제작의 마지막 연은 이렇다. '놀라워라 어둠과 빛을 꿰어 날으는 3번 뼈/이 질풍 같은 시간을 낚을 수만 있다면/까짓 뼈/12번까지 발라내도 아무렇지 않아라/남은 핏방울은 선연하고/뒤틀린 살을 만나 거친 숨 나누리/저것 봐/흙으로 빚고 갈비뼈로 지은 여자를/질벅질벅 몸 섞으려 내게 오고 있잖아.'

문학평론가 김영철은 김강태의 시에서 '불꽃의 투혼', '불꽃처럼 자기를 태우는 창조적 에너지, 그 순간적 폭발력을 존재에 들어붓고자 하는 실존적 몸부림'을 본다. 또한 그는 김강태의 시에서 보이는 해체주의적 포즈에서 1990년대에 현신한 이상(李箱)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김영철은 썼다. "이상의 시가 1930년대의 반역이라면, 김강태의 시는 1990년대의 저항이다."
김강태의 시세계는 다채롭다. 위에 인용한 시는 그 단편만을 보여준다. 김강태는 뛰어난 시인이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주변에는 언제나 친구와 선후배가 들끓었다. 그의 따뜻한 가슴을 느끼게 해주는 시집이 1987년에 펴낸 <혼자 흔들리는 그네>이다. 그가 2003년 5월 28일 세상을 떠났을 때 충격과 슬픔에 사로잡힌 곳은 시단이나 문단만이 아니었다.

나는 김강태가 떠난 다음 여러 달이 지났을 때 그의 대학 후배인 소설가 이용범이 <월간 현대시>에 실은 글을 읽었다. '아름답고도 슬픈, 동행'. 거기 이런 대목이 있다. "대학 1학년 때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노랫말을 지은 일도 있다. (중략) 번안 곡인 '두 개의 작은 별'을 작사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은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이 바로 그의 손을 거쳐 히트한 곡이다."

지금 '두 개의 작은 별'은 윤형주가 작사한 곡으로 돼 있다. 원래 독일 노래(Zwei kleine Sterne)다. 이런 내용. "창공에 뜬 두 별, 나와 함께 저 멀리 가리. 작은 두 별은 나의 마지막 인사이니 나 떠난 뒤 기억해 주오…." 김강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대학시절에 쓴 노랫말이 어떻게 가수 윤형주의 노래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한 일이지만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는 곧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시집 <등뼈를 위한 변명>은 '돌아오는 길'이라는 서시(序詩)로 시작된다. '…춥지만, 우리/이제/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한참을 돌아오는 길에는/채소 파는 아줌마에게/이렇게 물어보기//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 장사익이 이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그런데 제목을 '희망 한 단'으로 바꾸었다. 노래가 실린 음반(사람이 그리워서)이 나왔을 때 김강태는 천국에 있었으니 시인의 허락을 받았을 리 없다.

장사익이 김강태에게 물었다면 "그러라"고 했으리라. 나중에 알았더라도 별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를 인터뷰했다. "내가 머무는 곳의 삶은 당신의 삶과 직결돼 있다. 당신의 꿈, 당신의 사랑과 소망, 당신의 행복은 곧 우리 차원의 현실이 된다. 비가 내리는 어느 밤에 문득 그리움의 저편에서 뭐라 설명 못할 행복감이 밀려온다면 내 기도의 기척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허진석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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