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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그 후]이석기는 유죄, 보수단체 '계엄령 촉구'는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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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탄핵기각 및 계엄령선포 촉구 제12차 범국민대회' 광고/사진=조선일보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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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계엄령 선포하라, 계염령이 답", "계엄령 뿐, 군대여 일어나라".

대낮 최고 기온 영하 6도의 맹추위가 몰아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에서 보수단체들이 주최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피켓에 적힌 내용이다.
최근 들어 보수 단체들이 이처럼 대규모 집회를 열어 계엄령을 촉구하는 일이 잦아 지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현 상황에서 공공연하게 계엄령 선포를 요구하는 것은 내란선동죄이므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반면, 법리적으로 무리이며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 계엄령 선포로 탄핵 막자는 보수단체들

처음 터져 나온 것은 지난해 11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였다. 당시 윤용 전 고려대 교수는 참가자들과 함께 "빨리 군대 나와라, 빨리 탱크 나와, 빨리 총 들고 나와, 죽이자 죽일 놈은 죽이자, 탱크로 죽이나, 총으로 죽이자, 군대가 나와서 죽이자"는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선포하거나, 군대가 자발적으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하여튼 계엄령을 통해 탄핵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주장이었다.
압권은 지난 6일 국방부 인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땅굴안보연합회'가 주최한 집회였다. 이 자리에서 예비역 공군 소장 출신 한성주씨는 "계엄령을 선포하지 못해 남베트남이 망했다"면서 "박 대통령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 전 교수도 다시 나서 "국방부와 국방부 장관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며 "박 대통령이 십자가에 달려있는데 뭐하고 있는 것이냐"고 계엄령 선포를 촉구했다. 집회 참가자들도 "탄핵을 막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 "계엄령을 내려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빨갱이들을 척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후에도 탄핵 반대 집회 때마다 시위자들의 피켓ㆍ무대 발언 등에서 계엄령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동아일보사 앞에도 계엄령을 촉구하는 극우 성향 단체의 현수막이 걸려있을 정도다.
보수단체 계엄령 촉구 맞불 집회. 사진출처=연합뉴스

보수단체 계엄령 촉구 맞불 집회.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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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과 내란죄

계엄령이란 법적으로 '국가 비상 사태'에서 군사력을 이용해 사법과 행정을 유지하는 긴급조치를 말한다.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영장제도,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와 정부 및 법원에 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강력한 조치다. 전쟁이나 전쟁에 준하는 사태, 초대형 재난이나 집회ㆍ시위 등으로 기존 행정력으로 정상적인 국가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이때부터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계엄사령관이 행정기관ㆍ사법기관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문제는 현재가 계엄령을 선포할 정도의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연인원 1000만명이 넘는 대규모 군중이 촛불시위에 나서고 있지만 철저히 질서를 지키면서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현재는 기존 헌법 체제에 의해 국회 의결ㆍ헌법재판소 심의 등 대통령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법적인 헌정 중단, 즉 '친위 쿠데타'를 의미하며, 이를 공개적으로 촉구한다는 것은 내란 선동에 해당될 수 있다.

만약 이같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 경우 형법상 내란죄(內亂罪)로 처벌된다. 내란죄란 형법 87조에 규정돼 있다. 국토를 참절, 즉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해 주권 행사를 못하게 해 국가의 존립ㆍ안전을 침해하거나 헌법 질서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킬 경우 적용되는 형법상 조항이다. 국회의원 3분의2 이상 찬성과 헌재 심의 등 헌법 상의 절차를 준수하며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 탄핵이 계엄령에 의해 중단될 경우 '헌정 질서 문란'에 해당될 수 있다. 내란죄는 굳이 내란을 실행하지 않고 예비ㆍ음모ㆍ선전ㆍ선동만 해도 처벌받는다.

▲내란죄 처벌 사례

내란죄는 정적 탄압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는 만큼 굉장히 적용 요건이 엄격하기 때문에 사례가 드물다.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2004년 무죄 판결을 받았고,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민청학련 사건)으로 8명이 사형됐다가 2007~2009년 3차례의 재심 끝에 모두 무죄 판결이 난게 대표적 사례다.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 등 12.12 쿠데타 세력이 내란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었다. 최근에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당원 강연회 등에서 통신시설 등에 폭탄 설치 등을 언급했다가 내란 선동죄를 인정받아 징역 9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대법원은 2015년 1월 최종 선고에서 "피고인들은 전쟁이 발발할 것을 예상하고 회합 참석자들에게 남한 혁명을 책임지는 세력으로서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 구체적 실행 행위를 촉구했다"며 "내란선동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내란음모죄에 대해선 "폭동의 대상과 목표에 대한 관한 합의,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돼야 하지만 피고인들이 내란을 사전 모의하거나 준비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자료가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한편 헌재는 이 사건의 최종 판결이 나기도 전인 2014년 12월 이 전 의원의 사건을 빌미로 통합진보당을 '위헌 정당'으로 판결해 해산 명령을 내림으로써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 조사 와중에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해산 결정 시점 이전에 이미 결론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가 드러나 개입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계엄령 촉구 보수단체 집회. 사진=연합뉴스

계엄령 촉구 보수단체 집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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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란선동죄로 처벌해야" vs "법리상 무리, 표현의 자유"

그렇다면 과연 일부 보수단체의 계엄령 선포 주장이 내란선동죄에 해당될까? 이에 대해 법률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한상희 건국대 법률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란 선동에 해당된다"고 단언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은 계엄령을 선포할 여건이 안 된다. 그런데도 이를 부추기는 행동은 내란 선동에 해당된다"며 "이석기 사건의 판례를 보더라도 강의에서 이야기만 했고 실행된 것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내란 선동 혐의를 인정했는데, 공개된 집회에서 공공연하게 내란을 선동했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또 "실제 내란에 이를 정도로 고의성ㆍ실행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도 있는 일종의 정치성 주장일 수는 있다"면서도 "보수 단체들의 무분별한 쿠데타 선동을 사법 기관이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총검, 죽창들고 뛰쳐나오자는 소리를 국가 차원에서 조정하거나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우선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대해야 할 사안이라는 문제의식이다. 이석기 사건의 경우에도 대법원에서 내란 선동죄가 인정됐지만, 민주주의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진보 성향 법률가들은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봐야 한다"며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단체들의 계엄령 선포 주장을 이석기 판례를 이용해 고발할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실제 일부 시민단체ㆍ법률가들이 계엄령 선포를 주장하는 보수단체ㆍ인사들을 사법당국에 고소ㆍ고발하려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법리적으로 내란선동죄가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비록 과격하고 어이가 없는 비현실적 발언으로 겉으로만 봐서는 내란 선동이 분명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석기 사건 판례를 통해 "선동의 내용이 내란에 이를 수 있을 정도의 폭력적인 행위를 선동해야 하며, 피선동자에게 내란 결의를 유발하거나 증대시킬 위험성이 인정되어야한다"는 등 법적인 적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즉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촉구하는 일부 보수단체들이 단순히 집회에서의 발언이나 피켓ㆍ현수막ㆍ손팻말 등을 통한 홍보 행위에서 그칠 경우 내란선동죄로 보기 어렵다. 다만 세부적인 방법과 지침을 적시하거나 군인ㆍ박 대통령 등 행위 주체를 명시하는 등 구체화되거나 본격적인 행동으로 옮겨질 경우 내란선동죄로 처벌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도 있다는 게 법률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민변 소속 김우종 변호사는 "내란선동죄가 내란실행을 목표로 선동하기만 하면 성립하지만, 그 내용이 내란에 이를 정도로 폭력적인 행위를 선동해야 하고, 피선동자에게 내란 결의를 유발 또는 증대시킬 위험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며 "보수단체들의 시위 및 구호가 실제 내란선동죄로 처벌될 수 있을지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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